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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허셰(조화), 공생, 경쟁

등록 2009-09-15 21:32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오늘 공식 출범하는 일본 민주당 정부는 우애와 공생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다음달 1일 건국 60돌을 맞는 중국 공산당 정부는 국경절 공식 구호로 허셰(和諧·조화)를 선택했습니다. 나라마다 처한 사정과 선택한 용어는 다르지만,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해 사회적 격차를 극복하고 좀더 조화롭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목표는 같습니다.

두 나라 정부가 이렇듯 공생과 조화를 강조하는 데는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시장지상주의와 그 파탄의 결과로 빚어진 격차의 확대가 사회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에 도달했다는 위기의식이 있습니다. 현재 중국 내부에는 400년간의 차이가 공존하고 있다고 지적한 저명한 중국 작가 위화의 말처럼 중국의 도농간, 빈부간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평생고용보장 등으로 계층격차가 작은 나라라는 평판을 얻었던 일본도 1990년대 거품이 꺼진 이후 니트족이나 프리터가 큰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격차가 확대일로에 있습니다.

두 나라와 비슷한 발전 경로를 밟아온 우리의 사정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선 더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두 나라와 달리 97년 외환위기에 이어 지난해 금융위기까지 두 차례의 위기를 모두 겪으면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됐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미국과 멕시코 다음으로 양극화가 심한 나라가 됐습니다.

양극화, 즉 소득불균형의 심화는 어디서든 사회갈등을 낳는 골칫거리입니다. 그런데 삼성경제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한국의 소득불균형과 사회행복’이란 연구보고서는 그것이 우리나라엔 더욱 부정적 영향을 끼침을 보여줍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행복 수준이 아주 낮은 나라에 속합니다. 심지어 소득불균형이 우리보다 심한 미국이나 멕시코보다도 훨씬 낮습니다. 보고서는 이를 우리 국민의 높은 평등의식과 사회의 낮은 계층이동성 탓으로 설명합니다. 계층이동의 수단이던 교육이 오히려 그것을 막는 구실을 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요. 서울시내 외국어고 학생 가운데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비율은 0.2%에도 못미친다는 최근의 조사 결과도 그 한 예입니다.

평등의 정도를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사회에서 시시포스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하고 굴러떨어지는 현실에 대한 국민의 절망감이 한국 사회를 우울증 공화국, 분노의 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재벌 계열의 삼성경제연구소조차 이런 상황을 타개할 정책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정부는 변화를 택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거꾸로 돌린 역사의 시계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공생과 조화보단 여전히 경쟁이 이 정권의 화두입니다.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이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거부해온 관성 탓인가요? 아니면 이명박 대통령이 자수성가한 자신의 기억에만 매달린 채 달라진 환경을 인정하지 않는 탓인가요?

그나마 일말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건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등장입니다. 시장의 실패를 치유할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고 경쟁에 뒤처진 이들을 부축하는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케인스주의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 후보자는 서울대 총장 시절,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해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총리로서 자신의 이런 소신을 정부 정책 전반에서 관철해낼 수만 있다면 차기 지도자로 입지를 굳힐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그동안의 기대가 허명에 의한 것이었음을 확인한 국민들에 의해 내쳐지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현시점은 한국 사회는 물론 그에게도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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