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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늦어지는 핵 협상, 우리 역할은?

등록 2009-09-06 19:44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칼럼
미국신안보센터(CNAS)는 지난 6월 ‘환상은 없다: 북한에 대한 전략적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라는 제목의 대북정책 보고서를 냈다. 2007년 이 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으로 있었던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생각이라고 봐도 좋다.

보고서는 “협상은 비핵화를 실현할 유일한 수단”이라면서도 “단기적으로는 비핵화 성공 전망이 흐리다”고 본다. 그래서 장기적인 비핵화 실현과 단기적인 전략적 주도권 회복을 위해 ‘전략적 관리’ 정책을 도입할 것을 권고한다. 그 핵심이 핵 확산 차단과 더 강력한 대북 제재다. 이런 정책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주도력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지며, 협상이 실패해도 미국 지위에 근본적 손상을 주지 않는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곧, 제재는 협상을 유도하는 구실을 하면서 협상 실패에도 대비하는 보험과 같다. 문제는 이런 양다리 걸치기식 현실론이 협상 노력에 힘이 실리지 않을 가능성을 키운다는 사실이다. 협상 성패와 관계없이 지위가 손상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협상에 힘을 쏟아야 할 동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협상을 향한 운은 뗐다. 캠벨 차관보는 지난 7월 ‘포괄적 패키지’라는 화두를 던져 협상 틀 논의에 불을 붙였고, 8월 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 그럼에도 미국 움직임에는 활력이 떨어진다. 지금 진행되는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한·중·일 순방과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특별한 안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북 협상 조건과 내용 등에 대해 미국이 관련국들의 생각을 한번 들어보겠다는 정도라는 뜻이다. 대북 제재가 일정 부분 효과가 있고, 한국과 일본이 협상에 열의를 보이지 않으며, 북한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지 않으니, 미국 역시 서둘 이유가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북한은 미국의 이런 태도에 맞춰 대응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 3일 유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편지는 “(미국 등이) 제재를 앞세우고 대화를 하겠다고 하면 우리 역시 핵 억제력 강화를 앞세우고 대화에 임하게 될 것”이라며 “우라늄 농축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결속(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고 했다. 제재가 계속될 경우 원자로 복구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뿐만 아니라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을 본격화하겠다는 선언이다.

왜 미국과 북한 모두 협상을 말하는데 현실은 거꾸로 갈까. 미국의 느긋한 태도가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과거 어느 미국 정부보다 동맹국의 의견을 중시한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이 갈등을 유발한 경우가 많았던 데 대한 반성에서다.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타당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핵 협상 시작을 늦추는 데 기여한다.

지금 우리 정부의 어깨는 무겁다. 핵 협상이 재개되도록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해야 한다. 미국과 북한이 빨리 대화에 나서도록 동력을 제공하는 일은 우리만이 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 북한은 협상 분위기 조성에 우리 정부가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데,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문을 활짝 열지 않고 있으니 사태는 계속 꼬이게 된다. 협상 역량을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 최근 서울에 온 북한 조문단과의 접촉을 두고 우리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얘기할지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이래서는 6자회담을 포함한 핵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적극적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 법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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