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논설위원
일본 민주당 정권의 등장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10년 이상 다양한 수준에서 진행돼온 동아시아공동체 논의가 한층 활발해질 듯하다. 당장 민주당이 동아시아공동체 추진을 정책목표로 제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에서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논의는 1997년 아세안+3 체제가 출범하면서 본격화했고 2001년 정상회의에서 ‘평화·번영·발전’을 추구하는 ‘동아시아공동체’(East Asia Community; EAC) 비전이 채택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이후 참가국의 범위 등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 사이의 이견이 드러나면서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일본의 기존 입장은 무역이나 투자, 금융을 비롯해 에너지, 환경보존 및 대테러대책과 같은 분야에서의 기능적 협력을 축으로 기능공동체를 지향하다가, 자유시장을 중심가치로 삼는 가치공동체로 나아가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당연히 이를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미국의 정식 가맹 통로를 열어주기 위한 조처라고 의심해 왔다. 이런 기존 정책과 민주당이 추구하는 동아시아공동체가 얼마나 다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차기 총리가 될 하토야마 유키오 당 대표의 ‘나의 정치철학’이나 ‘일본의 새로운 길’이란 글을 살펴볼 때 적지 않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하토야마의 공동체론은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패권국가가 되고자 하는 중국 사이에서 일본은 물론 아시아의 다른 중소규모 국가들도 정치적·경제적 자립을 유지하기 위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패권적 행위를 억제하면서 경제활동의 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여러 나라의 바람이 지역 통합을 가속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견제하는 장치로 공동체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자민당식 접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동아시아공동체론의 바탕 이념으로 자신의 정치철학인 우애를 내세우고 있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우애는 프랑스혁명의 슬로건 가운데 하나인 박애와 같은 의미로, 자유와 평등이 근본주의에 빠져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우애에 바탕할 때에만 국가 내부에서는 물론 국경을 넘어선 범위에서도 공생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공생사회란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불가피할지라도, 구성원들이 고통을 분담해 사회적 경쟁 과정에서 뒤처지고 낙오한 사람을 배제하지 않고 부축해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동아시아공동체 단위에서 공생사회를 이루려면 국가 내부의 격차 극복과 아울러 국가 사이의 격차 극복 노력이 필수적이며, 그 과정에서 특정 집단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하토야마가 동아시아공동체를 이야기하면서 북한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은 문제다.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사카모토 요시카즈 도쿄대 명예교수는 동아시아공동체에 북한의 참여를 미루는 것은 현실적으로 북한을 포위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기능과 목적을 갖는 것으로 간주돼, 공동체 구성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인 집단안보를 달성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토야마가, 진정한 공생사회로서 동아시아공동체 건설을 원한다면 그 과정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지적한 것을 경청하기 바란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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