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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문제는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다

등록 2009-08-30 20:51

 곽병찬 편집인
곽병찬 편집인
여권에서 개헌론이 공론화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였다. 김형오 국회의장과 여당 지도부가 주거니 받거니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여당은 4월 재보선 전패에 이은 극단적 민심 이반 상황에서 가릴 게 없었다.

개헌론이 다시 나타난 것은 공교롭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직후였다. 김 의장은 아예 외신기자회견에서 개헌 방향을 제시하고, 한나라당 지도부는 개헌 시기까지 못박았다. 석 달 전까지만 해도 시큰둥했던 이명박 대통령 직계들도 나서서, 마치 개구리 합창하듯 개헌론을 읊어댄다. 민망했던지 이명박 대통령과의 교감까지 거론한다.

물론 논의 자체를 탓할 건 아니다. 대통령 단임제의 한계 때문에 현행 헌법은 제정된 순간부터 개헌론이 제기되는 수모를 당했다. 첫 당선자인 노태우 대통령마저 개헌에 사활을 걸었다. 적법한 정권교체가 다섯 번, 여야 간 정권교체도 두 번이나 이뤄졌으니,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현행 헌법의 미덕은 사라졌다. 오히려 단임제로 말미암은 부작용만 돋보였다. 여야 관계는 임기 초부터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둔 극한 대결을 반복하고, 여당 내부도 후계다툼으로 국정은 파행하기 일쑤니 개헌론을 막을 재간은 없다.

그러나 지금 여권이 제기하는 건 단임제의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대통령제의 제왕적 성격이다.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어 정당 및 의회정치를 고사시키고 권위주의 체제로 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 또는 정당이 공유하는 형태의 분권형 권력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태우 대통령도 결국 의원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다, 어렵게 되자 이원집정부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재임중 ‘물태우’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로 제왕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임제는 개헌론을 제기하는 군불로만 이용됐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가장 신경 쓴 대목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총리의 각료 임명제청권, 국회의 각료 해임결의권 등 내각제적 요소를 여럿 포함시켰다. 이런 헌법 정신에 충실해지려 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는 요청을 김근태 장관으로부터 받기도 했고, 일선 검사들과 방송 프로그램에서 맞짱 토론을 벌였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국정원 등 권력기구는 대통령의 몽둥이가 되었다. 방송 장악은 물론 정치적 반대세력 척결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박탈하며, 사신 검열, 도청 등 사생활을 유린했다.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기 위해 철거민을 불태웠고,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정치보복을 자행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한 포상으로 용산참사의 주역을 경찰 총수로 내정했고, 피디수첩 기소 등 주구 노릇에 성실했던 사람을 검찰 총수에 내정했다. 행정부처도 대통령의 관심사인 대운하를 위해 국가의 자원을 쏟아부었다. 법도 절차도 비판도 모두 묵살했다. 공룡 여당 한나라당은 홍위병을 자임해, 대통령의 관심사항 관철에 앞장섰다. 그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한 것이다.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를 문제 삼는 건 옳다. 그러나 대통령제가 본래 제왕적이라고 말하는 건 사기다. 사실 지금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여당 지도부다. 이들은 앞장서 당정 일체화를 추구하고 대통령의 충견을 자임했다. 내각제에서라도 총리를 총통으로 만들려 할 이들이다. 따라서 여당은 대통령의 제왕적 행태부터 바꾸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건 최소한의 예의다. 대통령도 개헌론에 공감하고 있다면 스스로 제왕적 행태를 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질 꼼수다.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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