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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정부는 뭘 하기에

등록 2009-08-18 21:00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현 정부 출범 초기에 ‘3무 대북정책’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정부의 이른바 ‘실용주의 대북정책’에 현실적 목표, 방법론, 국가적 정체성이 없음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그런 결심(핵 포기)을 보여준다면 정부는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구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현실적인 중간 목표가 없어 공허한 구호가 돼버린 비핵·개방·3000의 재판이다. 한나라당의 홍정욱 의원조차 이를 “기존 판(비핵·개방·3000)도 제대로 안 됐는데 새판을 짜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대북정책 방법론은 ‘원칙을 지키면서 기다리기’로 요약된다. 압박을 계속하되 북한이 스스로 약자임을 인정하고 손을 내밀면 도와줄 수 있다는 뜻이다. 방법론이라기보다는 대기업이 하청기업을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 국가적 정체성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미국에 모든 것을 기대다 보니 갈수록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 발언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가 북한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새 협상 틀 모색에 나선 뒤에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정부는 제재 국면이 협상 국면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이런 ‘3무’에다 없는 것 두 가지가 더 확인됐다. 우선 정세 판단 능력이 없다. 정부는 얼마 전 북핵 5자회담을 추진하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정세를 오판한 탓이다. 대북 압박에 매달리는 지금의 정부 태도에도 미국과 중국의 의도를 한쪽으로만 해석하는 잘못이 깔려 있다.

게다가 정책 수립에 중심적인 구실을 할 가온머리(컨트롤 타워)가 없다. 대북정책은 통일부와 외교부·국정원·청와대·경제부처 등 여러 기관에 기능이 분산돼 있어 종합·조정하는 사람이나 조직이 반드시 필요한데도 그 가온머리가 어딘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정책의 깊이가 없고 즉흥적 대응에 그친다. 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이 재래식 무기 감축 논의를 하자고 했다. 가온머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런 공허한 제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5무 대북정책’이 그동안 남북관계 악화에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국민을 상대로 냉전식 안보의식을 주입하고 대북 대결 분위기를 만드느라 분단 비용은 더 커진다. 통일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하기보다 대국민 정책 홍보에 열중한다.

이런 와중에도 기회가 왔다. 지난 17일 발표된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5개 항 합의가 그것이다. 합의대로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와 추석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고 개성공단 사업이 활성화한다면 남북관계는 전기를 맞을 수 있다. 백두산 관광은 경협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에 정부는 없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일주일간 북한에 머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동안 이명박 정부는 뭘 했는지 국민들은 의아해한다. 이후 정부 태도는 더 이상하다. 정부 관계자들은 현 회장이 아무런 정부 메시지를 갖고 가지 않았는데도 북한이 굽히고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기존 대북정책의 승리라는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이번 합의는 북한의 새로운 정세 판단과 현대 쪽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뤄졌다. 정부에도 기회인 것은 남북관계를 크게 바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제라도 적극적인 사고를 한다면 남북관계와 북한 핵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전에 ‘5무’를 청산하고 6·15 공동선언 이후 대북정책 성과를 겸허하게 수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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