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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서민의 대통령께

등록 2009-07-19 21:47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최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행보가 부쩍 눈에 띕니다. 신당동 떡볶이집 방문으로 시작된 서민행보는 수해를 당한 서민을 살피고 보육원을 찾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시장 상인과 택시기사를 만나 고충을 듣기도 했고요. 지난 16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선 “내가 대통령이 된 것은 서민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고 돌보라는 소명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대통령의 이런 말과 움직임을 진정성 없는 정치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습니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언론관련법을 기어이 밀어붙이려 하는 것이나, 검찰총장이나 국가인권위원장 지명 등을 보면 그런 시각을 탓할 수만도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고 싶진 않습니다. 이 대통령이 갖고 있는,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고학생 시절의 원체험을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 종교행사장에서 그런 원체험을 언급하며 소명을 이야기한 대통령의 진정성조차 의심해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산을 헌납하고 가진 자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며 시장 상인의 애환을 들어주고 보육원 어린이들을 위로한 일 모두 대통령이 말한 소명의식의 발로라 여기고 싶고, 또 그렇게 여기겠습니다.

이제 서민의 대통령을 자임하는 이 대통령께 간구하고 싶은 것은 이제까지의 서민행보에서 한걸음 더 앞으로 내디뎌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보시라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이들이 용산참사로 숨진 철거민들의 유족들일 것입니다.

생존권을 지키려다 지난 1월20일 목숨을 잃은 다섯 철거민의 주검은 아직도 순천향병원 냉동고에 보관돼 있습니다. 그 후 6개월간 유족들의 거처는 병원 영안실이었습니다. 겨울방학을 그곳에서 보내야 했던 아이들은 이제 그곳에서 여름방학을 맞았습니다. 당국의 사과와 재개발조합과 용산구청에 대한 감사, 임시 상가 제공, 유족 및 부상자에 대한 보상 등 유족들의 요구는 어느 것 하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지요. 정부는 참사 이후 유족 대표나 그들을 돕는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 쪽과 단 한 차례의 대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주검을 안치한 장례식장 사용료는 5억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이제 유족들은 “갈 곳 없는 주검과 막다른 길에 내몰린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라며 참사 6개월을 맞는 오늘 주검을 앞세우고 청와대로 행진하겠다고 합니다.

서민을 돌보는 것을 소명으로 여긴다는 대통령을 둔 나라에서 정녕 이런 사태가 일어나야만 하는지요? 용산사태가 이토록 장기화한 데는 “대화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청와대가 일체의 대화에 반대한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러나 법적 책임에 앞서 인간적 도리가 있습니다. 주검에 안식을 주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생존 대책을 마련해주는 일은 법 이전의 문제입니다.

대통령께서 믿고 사랑하시는 예수는 가장 낮은 자, 가장 헐벗은 자, 가장 애통해하는 자들을 부축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대통령께서 서민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소명을 이야기했을 때 바로 이런 예수의 모습을 떠올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제 유족들의 한 맺힌 이야기에 귀를 여는 큰 결단을 내리십시오. 대통령이 욕쟁이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등을 감쌌듯이, 유족들의 어깨를 감싸안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 사회를 상쟁의 사회에서 상생의 사회로 돌아서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대통령의 결단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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