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편집인
조선 팔도 가운데 충청도만큼 평판이 상반되는 경우는 없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창업한 정도전은 청풍명월에 빗댔다. 맑은 바람 밝은 달과 같다고 했으니 이보다 더 품격 높은 칭찬은 없겠다. 이런 평가는 정조 때의 문신 윤행임까지 내려온다. 그러나 그땐 이미 정반대되는 평판이 더 힘을 얻고 있었다.
영조 때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를 ‘오로지 세도와 재리만을 따른다’(專趨勢利)고 했다. 헌종 때 실학자 이규경 역시 ‘충청도 사람은 이익과 권세만 노린다’고 혹평했다. 청풍명월은 흔적도 없다. 이렇게까지 평판이 뒤집힌 곡절은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조 중·후반 권력을 장악했던 노론의 영수 송시열을 포함해 그 추종자들은 대개 충청 출신이었다. 이들은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해 다른 정파를 축출하려 했으니, 몰락한 남인 계열의 실학자들 눈에 충청인이 어떻게 비쳤을지는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가 하면 삼국시대 충청 동북부 한강 일대가 삼국의 쟁패지였던 사실에서 이들의 성품을 유추하려는 이들도 있다. 당시 이곳은 강자의 땅이었다. 득세했던 순에 따라 백제, 고구려, 신라가 차례로 이곳을 지배했다. 수탈과 죽음을 면하기 위해선 정치적 모호성과 순응을 유지해야 했고, 그것이 이 지역민의 성격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여론조사가 가장 안 통하는 곳이 바로 충청권이다.
요즘 충청도가 내세우는 브랜드는 ‘충절’이다. 고려말 대학자 이색, 조선 초 사육신 성삼문과 박팽년, 구한말 망국기의 최익현, 이상설, 유인석 등 죽음으로써 충절을 지킨 이가 허다하니 그럴 만하다. 일제 강점기에도 유관순, 한용운, 윤봉길, 이동녕, 신채호, 신규식, 김좌진 등 독립운동에 뼈를 묻은 인물이 즐비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의 정치사만 보면 충청인 평가는 아무래도 ‘전추세리’ 쪽으로 기운다. 권력의 이동기마다 이곳의 토호세력들은 권력을 쥔 쪽과 결탁해 세도와 재리를 취하려 했다. 그 대가는 물론 충청도의 상납이었다. 물론 쟁투하는 지역패권 속에서 이곳에 대해서만 독야청청을 요구할 순 없다. 하지만 부나비처럼 이 권력 저 권력에 몸 파는 걸 충절이라 할 순 없고, 권세와 재리에 눈이 멀어 유권자의 지지를 넘기는 걸 청풍명월에 비길 수도 없다. 1987년 대선과 88년 총선을 통해 지역패권을 이룬 이래, 김종필씨 등은 민정당·신한국당·국민회의에 차례로 이 지역을 정치적으로 매각했다.
물론 팔아넘긴 자는 정치꾼이지 지역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역민의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이들은 다음 선거에서도 매도자를 지지해 야합을 추인했다. 매수자들에 의해 단물만 빨아먹히고 쫓겨나기 일쑤였지만, 목전의 잇속과 세도에 눈이 멀었다.
‘전추세리’의 손가락질은 김종필과 함께 퇴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충청권 유권자를 팔아먹을 만큼 지역 기반이 든든한 인물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다시 충청도가 정치시장에 매물로 등장했다. 매수자는 정해져 있다. 매도자로 지목되는 이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다. 선진당은 지난달 말 이명박-이회창 회동 이후 여당과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충청 출신이 검찰총장·국세청장 후보자에 지명된 것을 계약금으로 보는 눈도 있다. 이 총재 자신은 최근 “정책 목표에서 공조한다면 총리·장관도 좋다”고 중도금까지 누설했다. 안팎이 소란스러워지자 밀약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여당과의 공조까지 부정하진 않는다.
이 총재와 충청도의 인연은 굳이 따진다면, 봉이 김선달과 평안도 수준이다. 충청도가 얼마나 헤프고 허접스럽게 보였으면, 이젠 김선달 같은 자까지 매도자로 나서게 되었을까.
곽병찬 편집인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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