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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이명박 정권의 자승자박

등록 2009-07-05 21:09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는 이란을 보면 과거 우리나라가 연상된다.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주로 농촌에서 지지를 받았고, 이란 개혁세력은 당시 우리나라처럼 도시 중간층을 기반으로 한다. 시민들의 끈질긴 투쟁과 희생이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듯이 이란에서도 억압적 신정정치 구조가 바뀔 때까지 저항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하고 사회·정치적 갈등이 있더라도 헌정의 틀이 흔들리지 않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민주화는 철지난 유물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틀이 잡히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성취가 필요하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는 질 높은 삶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뒷받침하는 필수요건임을 세계사는 보여준다. 이란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 역시 고통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에 있다.

과거 박정희 정권은 민주화를 거추장스런 사치로 보고 국가 주도 개발에 자원을 집중시켰다. 그 배경에는 ‘정승처럼 쓰려면 먼저 개같이 벌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물질을 사고의 한가운데에 두는 이런 인간관은 배고픈 시절 일정한 호소력이 있었으나, 존엄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 본성에는 위배되는 것이었다. 정권은 냉전 이데올로기를 적극 활용해 일상적으로 권력남용과 인권침해를 저질렀고, 이에 맞서는 사회·정치적 표현이 바로 민주화운동이었다.

지금 그때 얘기를 하는 건 이명박 정권이 당시 인간관과 통치양태를 되풀이하고 있어서다. 이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이긴 것을 단순히 물질적 인간관의 승리라고 폄하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정부 행태는 박정희 식의 개발독재형 경제중심주의는 물론이고 국민 목소리를 강압적으로 억누르려는 모습까지 그대로 닮았다. 친정부 언론들이 이데올로그로서 현실을 왜곡하고 극우단체들이 홍위병 구실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 냉전 이데올로기의 핵심 용어인 ‘빨갱이’가 ‘좌파’로 바뀐 정도가 다를 뿐이다.

이명박 정권이 한 일은 권력 강화와 기득권층 이익 확대에 대한 비정상적 집착이 사실상 전부다. 종부세 유명무실화로 시작된 일련의 부자 감세, 집요한 방송장악 시도, 건설회사를 핵심 수혜자로 해 수십조원의 세금을 퍼붓는 4대강 사업,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에까지 손을 뻗친 낙하산식 코드인사, 집회·시위·표현의 자유 억압, 권력기관을 동원한 시민단체 옥죄기, 친일파와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역사 왜곡, 최근의 비정규직법 무력화 기도까지 모두 그렇다. 이러니 아무리 착하고 인내심 강한 국민인들 등을 돌리지 않을까.

우리나라 보수정권들은 종말이 좋지 않았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자승자박의 길을 간 결과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축출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에게 피살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주권을 넘기는 치욕을 당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은 유배생활을 했다. 나름대로 전향적 정책을 내놓으려 노력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그나마 나았다.

최근 이 대통령이 중도를 강조하는 것은 방향 전환 시도로서 의미가 있다. 국민 통합뿐만 아니라 정권의 앞날을 위해서도 그렇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는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중도를 말하려면 경제·사회·정치·남북관계 등에서 중간층을 폭넓게 아우를 일관된 정책기조가 있어야 하는데, 교육 등 한두 영역에 대한 즉흥적 접근과 속보이는 이미지 개선 시도밖에 없다. 그는 지난해 촛불집회 때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했으나 결국 더 멀어졌다. 이전 정권과 비슷한 종말을 맞지 않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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