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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언론은 공멸을 원하는가

등록 2009-06-16 21:03수정 2009-06-16 23:27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지난주 중국 베이징에서는 한-중 고위언론인 포럼이 열렸습니다. 올림픽 기간에 크게 문제가 됐던 중국내 혐한감정과 전세계적인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함께 노력할 방안을 찾으려는 회의였습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중국 언론인들과 비판적 기능에 더 주목하는 한국 언론인들 사이의 논의는 평행선을 긋는 듯했지만, 결론은 왕천 중국 신문판공실 주임과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이 기조연설에서 공통으로 강조한 구동존이(求同存異)로 귀결됐습니다.

차이를 존중하면서 같음을 추구한다는 구동존이는 모든 관계 발전의 출발점일 것입니다. 이 말 속엔 차이를 인정한 채 공통점을 확대·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어느새 차이도 점차 좁혀질 것이란 믿음이 깔려 있지요. 귀로에 비행기 안에서 한국 신문을 보니 한국 언론계야말로 구동존이의 정신이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의 불매운동 대상이 된 신문들이 언소주는 물론 상대 신문마저 색깔론으로 덧칠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상호 비판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언론계에서 진행되는 날선 공방은 상호 비판의 범위를 넘어서 버렸습니다. 상대를 비판하는 말 속에는 증오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신문 지면엔 여과되지 않은 언어들이 난무해 언론 종사자들조차 눈살을 찌푸릴 정도니 일반 독자들의 고충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대만 고위 관리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대만 언론은 믿을 수 없다고 머리를 저었습니다.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거나 일방적 주장만 반복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인식을 낳은 결과, 대만 언론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한때 200만부에 육박하던 <연합보>의 발행부수는 30만부, <자유시보>는 10만부대로 줄어들었고 중립적인 <중국시보>는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태라 합니다. 이렇듯 대만 신문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심한 위기에 빠진 것은 신문들이 관전자 대신 선수 노릇을 하느라 상호 비방과 왜곡도 불사해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 탓이라고 그는 지적했습니다.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론의 신뢰도가 나날이 떨어지고 있음은 각종 조사에서 확인됩니다. 특히 한때 가장 신뢰받는 매체로 인정됐던 신문은 신뢰도에서 방송은 물론 인터넷에도 뒤진다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경품으로 독자를 매수하지 않는다면 현재 부수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오죽하면 언론 소비자들이 주권을 찾겠다고 나섰겠습니까?

소비자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들을 겁박해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일은 표현의 자유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언론이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비록 그들의 주장이 거칠고 불편하더라도, 자신들의 보도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사게 됐는지 되돌아보고 다른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소통의 매개체다운 태도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 이집트 카이로 연설에서 “우리의 관계가 차이에 의해 규정되는 한, 우리는 평화보다는 증오를, 협력보다는 갈등을 부추기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라며 “그런 의심과 불화의 악순환은 끝내야 한다”고 이슬람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제 우리 언론도 이념의 차이를 이유로 서로에게 창끝을 겨누는 대신, 공정하고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한껏 경쟁하는 본연의 언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방향을 틀지 않으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공멸뿐이기 때문입니다.


권태선 논설위원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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