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자칫하면 위기로 급진전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모두가 피해자가 되기 쉽다.
최근 북한 행태는 이전과 차이가 있다. 모든 나라가 경고하는 핵실험을 할 때는 확실한 목적이 있을 터인데, 그게 뭔지 분명하지 않다. 미국의 관심을 유도하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벼랑 끝 전술(협상력 강화론)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체제 정통성을 강화하고 결속력을 높이려는 의도(체제 강화론)에 비슷하게 무게가 간다. 권력 승계 문제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목표가 그 배경에 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벌이겠다는 생각으로 제 갈 길을 간다는 분석(핵군축 협상론)도 제기된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핵능력 개선과 핵무기 수출 의도에 주목한다(핵무기 판매론).
북한의 주된 의도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대응 방법도 달라진다. 특정 대응 방법을 선호하는 이들이 거기에 맞춰 북한 행태를 해석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핵군축 협상론자들은 대개 대북 강경론에 선다. 북한은 누가 뭐라든 하고 싶은 대로 하므로 협상은 무익하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경직된 체제 강화론자도 비슷하다. 핵무기 판매론 역시 강경론과 쉽게 결합한다.
강경론은 협상의 실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우선 사태가 악화할 경우 정책 실패를 호도하는 근거가 된다. 북한 체제의 기본 속성이 바뀌지 않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강경론자들은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태 악화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강경론은 무너진다. 강경론의 귀결점은 북한의 붕괴 또는 정권 교체인데, 전쟁을 감수하지 않는 한 이를 공공연하게 추진할 수는 없다. 게다가 어느 순간 국내 정치적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미국 정부는 과거 여러 차례 이 한계를 넘지 못하고 대북 정책을 재검토했다.
북한 행태가 내부 요인으로만 결정된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간의 경험이 말하는 것은, 체제 안보와 경제적 지원이 보장된다면 북한의 근본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방법이 바로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과 경협을 핵폐기와 연계시키는 포괄협상이다. 물론 불신의 벽이 높아진 지금 상황에서 모든 문제를 단기간에 진전시킬 비책은 없다. 그렇더라도 대화의 문을 넓혀가야 한다. 특히 핵 없는 세계를 지향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협상론에 서지 않으면 갈수록 운신 폭이 좁아진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시에 제기된 ‘100일 이내 특사 파견론’의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의 진의를 알고 본격 협상을 준비하려면 이른 시일 안에 고위급 특사를 보내야 한다.
중국이 전면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대북 압박이 실효성이 없듯이, 미국이 발 벗고 나서지 않는 협상은 성공하지 못한다. 곧, 대북 압박은 중국이, 협상은 미국이 열쇠를 쥐고 있다. 지금 논의중인 대북 제재가 북한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더라도 궁극적 해법은 협상에서만 나온다. 이 원리를 명심하고 실천해야 핵문제가 풀린다.
우리 정부는 거꾸로다. 이명박 대통령은 핵실험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한 통화에서 “1차 북한 핵실험 때 북한이 오히려 국제사회와의 대화가 재개되는 등 보상을 받았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긴밀히 공조해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에 대북 대화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다. 남북관계가 이미 갈 데까지 갔으므로 냉전식 대결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즉자적 발상이 아니라면, 이래서는 안 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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