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칼럼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합치면 한반도의 여섯배 반 크기(145만㎢)에 인구는 2억명이 된다. 지금 이 지역의 절반은 탈레반 영향권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이곳에서 ‘알카에다와 그 극단주의 동맹자’와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주적은 알카에다가 아니라 탈레반이다. 미국은 오사마 빈라덴이 어디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탈레반은 테러 조직이 아니라 지역 정치·군사 세력이다. 반외세라는 목표를 알카에다와 공유할 뿐이다. 7년 반에 걸친 아프간전 동안 탈레반은 주민들의 지지를 넓혀왔다. 오바마 정부가 만든 ‘아프팍’(아프간+파키스탄)이라는 말은 미국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확대된 전선을 감당하려면 훨씬 더 많은 병력과 돈, 국제 지원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이 다 충족돼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한다. 미국의 압박에 비례해 반미 여론과 탈레반의 영향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6년 전 조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 초기와 비슷하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전의 당위성을 설득하지 못한 채 각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부시 정권의 일방주의와 강압외교를 비판하며 스마트외교를 내세운 오바마 정부도 아프간전에 관한 한 다를 바 없다. 정치적 해법을 소홀히하고 2만여명의 병력 증파를 결정한 순간부터 선택 폭은 아주 좁아졌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이라크전 때를 연상시키는 영향을 한반도에 끼칠 것이다. 첫째는 파병 논란이다. 정부는 현재 아프간에 파견한 지방재건팀(PRT) 규모를 25명에서 85명으로 늘리고, 앞으로 3년간 아프간 지원액 규모를 3000만달러에서 7410만달러로 확대하겠다고 지난주 발표했다. 파병은 이번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 파병을 놓고 2003~04년 내내 진통을 겪은 상황의 재판이 예상된다.
둘째는 북한 문제다. 오바마 정부는 과거 부시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북한 문제를 뒷전에 놓음으로써 사태 악화에 기여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가 대탈레반 전쟁에 집중하는 한 이런 추세는 이어질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일부 인사들이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라도 파병이 필요하다’고 하는 모습도 이라크 파병 때를 연상시킨다. 노무현 정부가 미국 네오콘의 입김을 약화시키려 했다면, 지금 정부는 사실상 북-미 협상 움직임을 견제한다. 두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크게 다르지만,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한 지원을 대북정책과 연관시키는 억지논리는 닮았다.
미국 정부가 중동에 집중하다가 북한 핵 문제를 크게 악화시킨 뒤 임기 막판에 대북정책을 바꾼 전례를 되풀이할지도 관심거리다. 물론 지금 상황은 과거와 비슷한 점도, 다른 점도 있다. 부시 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꾼 주요 계기는 2006년 가을 북한 핵실험과 중간선거 패배였다. 반면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자산은 아직 여유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2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른 시일 안에 대북관계에서 전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내년까지 갈등이 고조되면서 부시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교훈을 얻지 못하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미국은 ‘제2의 베트남전’이 될 아프간전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고,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북한 핵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공언한 ‘핵 없는 세계’도 이뤄질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동맹국으로서 미국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적극 유도하고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주도적 구실을 회복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 모두 실패한 과거의 데자뷔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실장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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