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는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떡값을 건넸고 …,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은 고검장 신분으로 이학수 부회장 방으로 직접 와 휴가비를 받아 가기도 했다 ….” 1년여 전 김용철 변호사가 한 고백이다. “제가 금년(2000년) 1월에 비비케이(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위해 사이버금융회사를 설립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업 목표대로) 비비케이는 올해 9월 현재 28.8%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1년 반 전 드러난, 이명박 전 의원의 2000년 광운대 특강에서의 자랑이다.
전자는 명예훼손에 의한 형사처벌을 각오한 것이고, 후자는 ‘금융인 이명박’을 내세운 것이니 거짓이라고 볼 이유가 없다. 그러나 검찰은 고백과 자랑을 거짓으로 묵살했다. 치명적인 피해자가 발생했는데도 이들을 처벌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검찰 총수는 같다. 그런데 탈세·배임·횡령·뇌물공여 등의 혐의가 확인된 박연차씨의 말에 부여하는 권위는 전혀 다르다. 특히 “나는 대통령을 보고 돈을 줬다”고 한 진술(그에게 줬다는 말이 아니다)은 절대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를 모두 입증하는 진실의 원천이다. ‘부인·아들·조카사위·집사에게 돈이 흘러들어간 것을 모를 리 없다, 그 돈은 당신 돈이다’ 따위의 추측은 이 말에 의해 진실이 된다.
그러나 그건 검찰의 믿음일 뿐, 법정에서 채택될 가능성은 낮다. 그래서 40~50여일 동안 사돈의 팔촌까지 샅샅이 뒤졌다. 결국 전직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했다. 역대 세 번째다. 최고의 대사를 치렀으니 환호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검찰은 뒤숭숭하다. 사실 전직 대통령을 소환할 정도의 혐의라면 영장 청구는 당연하다. 이제 와 갑론을박할 일이 아니다. 수사 과정에서 여당 대표로부터 지저분한 수사라는 지적까지 당했으니, 검찰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총장의 여론수렴과 함께 국가 체통이니 전직 대통령 예우니 하는 말들이 나온다.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꼴이다.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 체면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재임 때 푼돈이나 먹은 잡범이 대통령을 한 나라로 널리 공표됐다. 게다가 지난 40~50일간의 수사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은 만신창이가 됐다. 영장을 청구하건 말건 바뀔 게 없다. 오히려 법원이 유무죄 판단을 신속히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나라를 하루라도 빨리 오물통에서 건지는 길이다. 혹시 법원에 의해 영장이 기각되는 걸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두 번 해본 일인가, 법원의 정치적 결정을 비웃으면 된다.
사실 걱정되는 건 다름아닌 검찰의 체면이다. 형사처벌을 각오한 고백이나, 대권을 꿈꾸던 사람이 벌여놓은 자랑은 거짓이라 하고, 아리송한 형사 피의자의 말에 종교적 경전의 권위를 줬을 때부터 생긴 문제다. 확고한 증거도 없이 전직 대통령 사냥을 공식화하면서 더욱 커진 문제다. 물론 검찰과 정권은 두 달 가까이 걸진 잔치를 벌였으니 여한은 없겠다.
문제는 뒷감당이다. 박씨는 많은 사람의 이름과 행적을 토해내고 또 토해낼 것이다. 생판 모른다는 사람마저 그의 이름을 팔아 수억원을 챙겼다는 이상득 의원,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천신일, 그밖에 이종찬·추부길 등.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한다면 ‘떡찰’, ‘견찰’은 물론 ‘광찰’이라는 비난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빚이 있다. 아무리 신중해도 전직 대통령 수사는 분란을 초래한다. 이번엔 증거도 확실치 않다. 정치보복이라는 드라큘라를 불러낸 것이다. 영장 청구로 쇼를 한다고 탕감될 빚이 아니다. 증오와 복수의 거대한 격투기장이 될 4년 뒤가 걱정이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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