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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대반전을 기대한다

등록 2009-04-26 22:01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칼럼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을 배울 때 교사가 날짜를 정해놓고 무조건 외우라고 했다. 당연히 못 외운 아이가 훨씬 많았다. 교사는 이들을 매로 다스렸다. 교사는 목표 관리만 하고 모든 책임을 학생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요즘 들어 심해진 줄세우기 교육과 같은 발상이다. 물론 당시에도 다른 방법으로 가르친 교사가 있었다. 유도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9단까지 다 익히게 되는 그런 방법 말이다. 이런 교사에게 배우는 아이들은 매를 맞아야 할 이유도, 교육 목표가 뭔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세상만사가 그렇다. 목표 설정은 어렵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방법론 개발과 실천이다. 방법이 올바르고 실천이 치밀하다면 목표는 잠시 잊어버려도 좋다. 시간이 지나면 그 목표가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에서는 이런 원리가 쉽게 잊혀진다.

대북 정책의 목표가 뭐냐고 물으면,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 목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 갈 방법론이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해 나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부는 이제까지 햇볕정책이라는 괜찮은 방법론을 비난하면서도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억지로 꼽는다면 ‘원칙과 유연함’ 정도인데, 그 원칙이 결국 비핵·개방과 다를 바 없어서 목표를 되뇌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북한에 대해 교사 수준의 권위를 갖고 매를 휘두를 수 있다면 이런 태도가 부분적으로나마 통용될 수도 있지만, 조지 부시 전 행정부의 대북 정책 실패가 보여주듯이 초강국인 미국도 그런 권위와 매는 갖고 있지 않다.

늦기는 했으나 북한 로켓 발사와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파동을 계기로 정부 안에서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본격화한 듯하다. 피에스아이 전면 참여 발표를 두고 정부 태도가 왔다갔다한 것은 그런 고민의 산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북 정책은 그만큼 현실성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새 방법론의 효과를 가늠할 시금석은 곧 있을 개성공단 관련 남북 협상이다. 여기서 적어도 서로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성과를 내야 다음 단계를 내다볼 수 있다.

새 방법론은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분명한 지향점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남북 사이 합의를 존중한다’는 이전 입장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10·4 및 6·15 선언 이행 의지를 나라 안팎에 분명히 각인시켜야 한다. 북한은 개성공단 토지 임대료·사용료와 임금 문제를 제기하면서, 6·15 선언에 따라 공단 사업에 특혜를 줬으나 이제는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개성공단만이 아니다. 두 선언 이행에 대한 북한의 의구심이 풀리지 않으면 어떤 남북관계도 쉽지 않다.

대북 정책 추진에서 중심을 잡는 일 또한 중요하다. 이제까지 통일부와 외교부는 딴소리를 하고 청와대는 구심점이 되기는커녕 조정 역량도 발휘하지 못했다. 정부 밖에 컨트롤 타워가 따로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청와대 비서관의 실무적 판단에 따라 대북 정책이 좌우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모든 대북 사안을 챙긴다고 하지만 이 또한 정상은 아니다. 통일부에서 청와대를 거쳐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정책 라인과 범정부 차원의 조정 틀이 함께 제대로 가동돼야 한다. 통일부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활발해진 것은 이런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남북관계는 지금 최악의 상태로 내려갈지, 아니면 반전의 계기를 잡을지 분기점에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도 곧 대북 정책 재검토를 마무리하고 행동에 나설 것이다. 대반전의 기회는 열려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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