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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그럼 왕초는 누구지?

등록 2009-03-03 18:51수정 2009-03-04 17:45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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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언론 관련법 등 쟁점법안의 처리 시점과 방법이 타결된 뒤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이렇게 자평했다. “굴욕적 합의!” 압도적인 여당 우위 국회에서 표결로 처리한다고 했으니, 야당은 시기만 늦췄을 뿐 원칙에선 투항했다는 시민사회의 지적과 상통한다.

여권은 표정관리에 애썼다. 총력전을 독려했던 대통령의 형님 이상득 의원은 ‘손해 본 거 없다’고 짐짓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막후의 이 의원과 전면에서 지휘하던 홍준표 원내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희희낙락하던 한 사진(<한겨레> 3일치 5면)은 그들의 득실계산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 사진은 엉뚱하게도 이런 의문을 자극했다. 그럼 왕초는 누구였지?

이 의원이 똘마니 발언을 했을 때 당연히 가졌어야 할 의문이다. 하지만 평소 상왕 혹은 대원군과도 같았던 그의 권세를 생각하며, 그런 권력을 행사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저지른 실수였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그가 말한 ‘이명박’은 집권 여당의 사실상 오너요, 이 나라의 최고권력자다.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만사형통’의 형님이라도 “내가 이명박이 뭐, 뭡니까 …, 시키는 대로 하는 똘마니입니까”라고 내뱉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단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실력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등불을 상밑에 둔다고 그 빛을 숨길 수 없듯이 왕초 또한 장막 뒤에서 호령한다고 그의 존재를 숨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왕초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성공한 거사였으니 논공행상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면 각자의 역할과 평가도 있어야 한다. 지휘체계가 간명하고 구실이 명확했던지라 등급은 쉽게 정해졌다. 구실로 따지자면 각본은 청와대가 썼을 테고, 총연출은 이상득, 조연출 박희태 홍준표, 남우 주연 김형오, 그리고 엑스트라 한나라당 의원과 당직자였다. 여기에 막판에 끼어든 단역이었지만, 박근혜 전대표는 여우 주연이었다. 여기까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제작자다. 청와대와 국회의장은 물론, 형님과 여권을 총동원할 수 있는 전능한 제작자는 누군가?

물론 똘마니 발언으로 대통령과의 상하관계를 거부한 이 의원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주인은 국민일 뿐, 대통령이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국민이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불행하게도 연출상의 착오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게 됐다. 한나라당이 야당을 꼬드기기 위한 방송법 개정 협상안을 제시하면서, 대기업을 지상파 방송 참여 주체에서 빼겠다고 해, 그의 정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다. 방송법안의 쟁점은 재벌 방송과 이른바 ‘조·중·동 방송’의 허용이었다. 재벌을 제외하면 조중동만 남는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논리를 억지로라도 꿰맞추자면 재벌을 배제해선 안 된다. 이 정권이 방송법 개정의 유력한 이유로 내세운 건 경제적 효과다. 일자리가 2만1천개나 늘고, 생산유발 효과는 2조9천억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건 재벌이 방송시장에 뛰어들어 새로운 방송사를 설립하고 투자한다고 해도 기대하기 힘든 것이지만, 재벌이 배제될 경우엔 아예 논의조차 될 수 없는 일이다. 족벌 신문엔 그럴 만한 여력도 의지도 없다. 그저 기존의 지상파 방송을 날름 삼킬 궁리만 한다.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이 정권은 언론 관련법 처리에 사활을 걸었다. 국가경제나 민생 살리기와 무관한데도 그랬다. 그 혜택을 취하는 것은 따로 있다. 언론을 넘어, 영원히 교체되지 않는 권력을 꿈꾸는 족벌언론이다. 성전이나 치르듯 입법전쟁을 벌이는 이들은 왕초를 위해 재주나 부리는 곰일 뿐이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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