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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일제고사 파동을 넘는 길

등록 2009-02-22 20:54수정 2009-02-22 21:31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칼럼
일제고사 성적 공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임실의 기적’이 새빨간 거짓으로 밝혀진 데 이어 전국 각지에서 성적 조작 의혹이 잇따라 공개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청에 대한 감사와 의혹에 대한 전면조사를 들고 나섰다.

그러나 수많은 반대 속에 일제고사를 강행한 당국이 이런 사태를 예상 못했다면 한심한 일이다.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실효성 있는 지원대책 대신 모든 책임을 현장 교사와 학교에 돌리고 일제고사 성적을 승진에 연계하겠다는데 누군들 성적 조작의 유혹을 느끼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앞으로 시험과 채점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따위의 대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일제고사 성적 공개로 학교간 학생간 경쟁의 불을 붙이려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한 이런 일은 물론 이보다 더한 문제도 일어날 수 있다. “정부가 경쟁으로 내모니 학교나 교사는 아이들을 채찍질할 수밖에 방법이 없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에게 학교는 죽음보다 더한 지옥이 될 것”이라고 한 일선교사는 지적한다. 실제로 강남의 한 사립학교는 일제고사 실시 이후 1년 363일 야간자율학습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이번 일제고사 파동은 한국 교육에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교육당국이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다시 성찰해 대안을 찾는다면 말이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일제고사가 “학력부진 학생에겐 보충지도를, 우수 학생에겐 성취동기를 부여해 학교 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으며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수립에 기초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 내실화와 교육격차 해소는 분명 중요한 정책목표다. 그러나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꼭 말썽 많은 일제고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교육선진국으로 주목받는 핀란드에선 전국적 수준의 일제고사가 없어도 세계 최고의 학업성취도와 가장 적은 교육격차를 자랑한다. 그렇다고 평가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표본추출을 통한 전국 단위의 상대평가를 비롯한 다양한 평가가 실시된다. 핀란드 평가제도에서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개별 학교에 대한 평가 결과는 오직 그 학교에만 통보된다는 사실이다. 핀란드 교육당국자들은 이것이 평가받는 학교와 평가자 사이의 상호 신뢰와 협력을 보장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평가의 목표가 모든 학교에 동등한 양질의 교육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지자체나 국가가 제때에 관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지 학교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당국이 일제고사 결과 공개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학교와 교사를 불신해 그들을 통제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평가 공개 후 일부 교육감들이 교장과 교감 승진과 일제고사 성적을 연계하겠다고 한 게 단적인 예다. 승진 등 사적 이익을 미끼로 닦달하지 않으면 교사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교사들의 자존감을 이토록 짓밟으면서 한국 교육이 제대로 되길 기대한다면 낯두꺼운 일이다. 교사는 아무렇게나 굴려도 되는 도구가 아니고 우리의 미래세대를 키워낼 막중한 책임을 진 분들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육적 성취는 형평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유연한 교육시스템과 더불어 우수하고 책임감 있는 교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제 온갖 문제가 다 드러난 일제고사는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왜 우리 교육이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돈을 들여 아이들을 파괴하는 교육”이라는 비판을 받는지 성찰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의 근본을 다시 짜야 한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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