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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그래, ‘쑈’를 하라

등록 2008-12-09 21:09수정 2008-12-10 01:08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굶주린 아들 딸애들의/ 그, 흰 죽사발 같은/ 눈동자를,/ 죄지은 사람처럼/ 기껏 속으로나 눈물 흘리며/ 바라본 적이 있은/ 사람은 알리라.// 뼈를,/ 깎아 먹일 수 있다면/ 천 개의 뼈라도 깎아 먹여주고/ 싶은,/ 그 아픔을/ 맛본 사람은 알리라.// ….”

국방부가 불온도서로 낙인찍은 신동엽 시인의 장편 서사시 <금강>의 일부다. 지금과는 거리가 멀고도 먼 상황임에도, 그런데도 국방부가 굳이 금서 목록에 올린 이유를 알 수 없다. 굶주림을 실직이나 빈곤, 차별 따위로 바꾸어 읽을 염려가 있어 그랬다면 혜안이겠지만.

<금강>의 시편은 지금 현실의 한 단면으로 다가온다. 체제를 위협한다는 청년실업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데도, 기업들은 해고자를 쏟아내고, 정부는 공공부문에서마저 정리해고를 강제한다. 지하도엔 노숙자가, 거리엔 청년 백수, 새벽 인력시장엔 날품 일꾼들이 넘쳐난다. 그렇다고 밥까지 굶기야 할까마는, 상실감과 절망감은 그때 못지않다. 서른이 가까워 오도록 알바를 전전하고, 어쩔 수 없이 인생 막장이라는 비정규직으로 들어선 자식을 보는 부모라면, 천 개의 뼈를 깎아내는 심정이다.

그럼에도 ‘그분’은 물정 모르는 소리로 상처에 소금을 뿌려댄다. “냉난방이 잘 되는 사무실에서 하는 경험만 경험이 아니라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며 얻는 경험이 더 값지다.” 염장 지르는 걸까. 요즘 이력서 칸이 모자라 알바·인턴 경력이 없는 젊은이가 어디 흔한가. 그런데도 “상황을 탓하며 잔뜩 움츠린 채 편안하고 좋은 직장만 기다리는 것은 해법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 비정규직은 왜 기피하느냐는 것인데, 지옥행 열차라는 비정규직호로 떠미는 그 용기가 존경스럽다.(그 실상을 알고 싶다면 연극 <대한민국 20대, 누가 구원할 것인가> 대본이라도 구해 보시라.)

1년 전 그의 첫번째 티브이 찬조연설자가 청년 백수 이영민씨였다는 걸 그는 기억할까. 부산 자갈치 아지매를 어머니로 둔 그는 100번 이상 원서를 냈지만 허사였다며 그에게 ‘제발 살려주이소’라고 호소했다. ‘냉난방 따지고, 편안하고 좋은 직장 기다리지 말라’는 말은 그에게 한 답이 됐다. 두번째 찬조연설자는 충북 진천의 ‘소 할머니’였다. 한-미 쇠고기협상이 타결되자, 할머니 입에선 ‘딱 굶어죽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값싸고 좋은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하겠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호기롭게 말했다.

엊그제는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다시 한 노점상 할머니를 만났다. 구원투수로 이용했던 사람들이 생각났던 것일까. 할머니는 그에게 기대어 눈물지었고, 그도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왜 할머니에게 이렇게 속삭이지 않았을까. 지금 주식 사면 부자가 된다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도 미웠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러나 돌아서자마자 부자들의 세금은 덜어주고, 실업자·노점상·비정규직에게 돌아갈 지원금은 대폭 깎아버린 예산안을 독려하는 태도를 보고는 더 심한 독설이 떠올랐다. 그러면 그렇지, 그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다. “쥐어짜면 짜는 만큼 나오는 거야. 연말 기부하는 건 서민들이라고 하지 않아. 민심은 조변석이다. 쇼만 잘하면 돌아오지.”

그럼에도 다산의 <애절량> 한 구절 풀어야겠다. 세금(군징) 때문에 갓난 사내아이 생식기를 자른 남편을 보고 울부짖는 어미 이야기다. “…말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이르는데/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부자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면서/ 한 톨 쌀, 한 치 베도 바치는 일 없으니/ 다 같은 백성인데 왜 이다지 불공한고 ….”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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