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칼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등을 강도 높게 비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보수세력들의 아우성은 한마디로 적반하장이다. 문제가 된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이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내려 하니 야당과 시민사회세력이 힘을 합쳐 역주행을 막아달라는 당부였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이를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도전’ ‘반정부 투쟁 선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집권 10개월도 안 되는 사이에 역주행으로 나라 꼴을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목청을 높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 정권 들어 이 나라 민주주의는 앰네스티가 언론과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 유린에 심대한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퇴행했다. 큰소리쳤던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대북정책의 파탄으로 폐쇄 위기에 몰린 개성공단을 보며 한숨을 토해낸다. 김 전 대통령의 질책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통일부 장관이 “원로로서 현재 남북관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신 말씀”이라 평가한 것은 그러므로 당연했다. 그런데도 보수세력은 현실을 호도하기 위해 장관을 윽박지르니 딱할 뿐이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사적인 변화를 겪는 운명적 시기인 만큼 좀더 창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고민을 하라”고 주문한 것을 보면 기존의 사고로는 현 위기를 돌파할 수 없음을 알긴 아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말과 달리 그의 접근이 전혀 창조적이거나 미래지향적이지 않고 오히려 퇴행적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쟁점인 남북관계만 봐도 그렇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개성공단 상주인력 철수 요청에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라며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북한 스스로 대화에 나설 때까지 기다려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국제관계의 변화와 북한 정권의 성격에 비춰볼 때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자해적이기까지 하다.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공언했고, 대북수교 목전에까지 갔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에 사실상 내정됐다. 그래서 새 행정부가 집권 초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북한과 포괄적 해결을 모색하리란 전망이 많다. 남쪽이 과거 김영삼 정권처럼 대북 경제지원을 지렛대 삼아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을 심산이라면 이는 오산이다. 클린턴 정권 당시의 학습효과 때문이다. 또 다자협력을 대외정책의 기본 축으로 내세운 오바마 정권이 중국이라는 우회로를 택할 수도 있다. 일본 역시 미국 새 정권과의 관계나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해 우리 쪽에 서기 어렵다. 더군다나 새해에는 일본에서도 정권교체 가능성이 점쳐진다. 한국이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개성공단에 관한 조처를 발표한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의주 방문 소식을 전한 것 역시 주목해야 한다. 개성공단 대신 신의주에 중국 동북지방과 연계된 산업클러스터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남한에는 개성공단 같은 공단이 수백 개 있다”며 개성공단 폐쇄가 별일 아니라 했지만, 이는 착각이다. 개성공단은 국가 신인도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남북관계의 척도다. 더군다나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북한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부는 북한을 중국 쪽으로 밀어내기만 한다. 이러고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오바마처럼 “국민이 매일 겪는 ‘고난의 맥박’ 위에 손을 얹겠다”는 지도자를 갖는 것은 정녕 꿈인가?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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