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칼럼
토요일 오후 중국 선전의 놀이동산 놀이기구들은 멈춰 서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들로 흥청거렸다는 바닷가 카페도 한산하기만 했다. 이곳에서 오래 사업을 해 온 재일동포 사업가 이성사씨는 이를 “선전에 닥친 불황의 깊이”로 설명했다. 농민공의 저임금에 의존해 온 외자기업들의 상당수가 임금을 떼먹고 야반도주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츠푸린 중국 하이난 개혁발전연구원 집행원장도 금융위기 여파로 중국내 수출 중심 중소기업의 25%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고, 설이 아직 멀었음에도 농민공들이 귀향길에 오르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금융위기 파장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 수 있다.
‘동아시아 공생사회는 가능한가’를 주제로 8~9일 선전에서 열린 동아시아평화포럼에서 한국·중국·일본의 지식활동가들은 이런 위기를 동아시아 상생의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여, 각국 내부의 격차 극복과 국가간 격차 극복을 위한 공동 노력이 대안이 될 수 있음에 동의했다.
현재의 금융위기는 미국은 소비하고 한·중·일 동아시아 세 나라는 물건을 팔아 온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려면 세 나라의 수출주도형 경제를 내수형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내수 시장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관건은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낼 것인가 하는 점이 된다.
이와 관련해 올 7월 <세계금융위기>라는 책을 저술해 세계적 금융위기를 예언한 가네코 마사루 일본 게이오대학 교수의 제언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프론티어와 시장프론티어를 개척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대체에너지 개발 등 환경·에너지 분야가 새로운 산업프론티어라면, 동아시아 각국이 자국내 격차 극복을 통해 만들어낼 내수시장과 한국과 일본이 중국의 내부 격차 극복을 도와 만들어낼 수 있는 중국 내륙시장이나, 북한 등이 새로운 시장프론티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세 나라는 모두 내부의 격차 확대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번 금융위기조차 신자유주의적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격차가 더 확대될 수밖에 없을 것은 자명하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양극화 지수가 급격히 악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자면 신자유주의적 방식이 아닌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가네코 교수는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고용안전과 사회보장을 해체한 것이 내수시장의 악화를 가져왔고, 이것이 다시 단기 유동성 자금에 의존하게 만들어 현재의 금융위기를 불렀으며, 이 위기가 실물경제를 악화시켜 다시 위기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킨다”며, 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은 단순히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금융위기에 처한 동아시아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공통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도 최근 <뉴욕 타임스> 칼럼에서 “위기의 시대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자본소득세를 줄여주는 것보다 훨씬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기심은 나쁜 경제학이라고 했지만 이는 좋은 도덕이야말로 좋은 경제학이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을 거리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 일본의 근로빈곤층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중국 개혁의 상징인 선전의 마천루를 신기루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동아시아 3국은 함께 자본의 탐욕을 억제하며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격차 극복이야말로 금융위기 극복과 동아시아 공생의 길이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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