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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눈물 머금은 신’은 없었다

등록 2008-08-26 19:07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 아내 박씨는 밥 숟가락을 입에 문 채 죽어 있고,/ 김 노인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내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구급차가 와서 두 노인을 실어간다/ 음식물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도/ 거동 못해 아내를 구하지 못한/ 김 노인은 병원으로 실려가는 도중 숨을 거둔다 ….”(눈물 머금은 신이 우리를 바라보신다)

나는 이 지독한 죽음의 참상을 이진명 시인의 시를 통해 알았다. 명색이 뉴스를 다루는 자가 수없는 되새김질 끝에 탄생하는 시를 통해 뉴스를 얻은 것이 부끄러웠고, 두 사람의 죽음으로 드러난 나와 우리 공동체의 무관심과 잔인함에 진저리쳤다.

하지만 마음 한켠엔 닫힌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두드리는 소리와 같은 애잔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도 거기엔 사랑이 있지 않은가. 수년째 누워 꼼짝 못하는 남편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던 여인이 있고, 그저 눈물로 감사하며 여인을 지켜보던 남인이 있지 않았던가. 그래, 이 삭막한 시대에 무력하긴 하지만, 신은 그래도 사랑만은 남겨놓은 거야. 살 만한 건 그 때문 아닌가? 시인처럼 나도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물론 평소 이웃에 대한 나의 방관과 방임과 무관심의 죄를 용서해 주고, 오히려 영혼의 안식을 베풀어 줄 신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최근 단신 한 토막을 읽고는 가슴이 턱 막혔다. 숨 쉬기도 싫었다. 이렇게 하루 세 끼 밥 먹고, 화장실 가고, 하늘을 바라보고, 산을 오르고,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싣고, 별과 바람과 구름을 노래하는 것들이 가증스러웠다. 세 살, 여섯 살짜리는, 술과 치킨을 먹다 숨진, 어미의 썩어가는 주검 옆에서, 나흘씩이나, 과자 부스러기와 날옥수수를 씹어가며, 이웃 사람이 문 열 때까지, 바퀴벌레처럼 살아 있었다!

그 참혹한 삶 앞에서 울컥 솟는 것이 있었다. 신은 있기라도 한 걸까.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도, 인간의 존엄성을 말할 근거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인간이 바퀴벌레와 달라야 하는 이유는 없다. 다만,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함께 슬퍼하며, 외로운 이들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실 이것만으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그 원룸엔 인간이 마지막으로 기댈 사랑도 없었고, 무죄한 그 아이들을 눈물 머금고 보아줄 신도 없었다. 그래서 가래침 뱉듯이 내뱉었다. 맞아, 신은 죽었다! 눈물 머금은 신은, 저 무죄한 아이들을 지켜줄 신은 이제 없다.

그러나 신의 죽음을 선언했던 니체의 말처럼, 신이 자연사한 건 아니다. 예수가 성직자와 권력자들 손에 죽었듯이, 그를 믿는다고 떠벌리던 자들에 의해 신은 죽임을 당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말하겠소. 신을 죽인 건 우리요.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살해범이오. 이제 우리는 어떤 물로 우리 자신을 순결하게 씻어낼 수 있을까.” 교회를 돌아다니며 ‘신에게 영원한 안식을’이라고 외치던 니체의 광인은 이렇게 덧붙였다. “이 교회들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신의 무덤이나 기념비가 아니라면 ….”

신의 존재를 따지려는 건 아니다. 모든 종교가 인정하듯이, 인간에겐 불성이든 예수의 성품이든 이른바 신성이 있다. 연민·동정·자비·사랑의 마음이 그것일 터이다. 우리 시대의 ‘살신자’란 바로 그 신성을 죽이는 자들이다. 살신자 역시 겉으론 신을 소리쳐 부른다.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을 그들의 신에게 봉헌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섬기는 것은 눈물 흐르는 신이 아니다. 황금의 우상일 뿐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까지도 자본의 절대성 앞에 복속시킨다. 이제 저 무죄한 사람들을 누가 지킬 것인가. 눈물 머금은 신은 죽었으니.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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