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칼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는 시위와 정부의 강경대응이 계속되는 뒤숭숭한 상황을 뒤로하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세계여성학대회로 향하는 발길은 한없이 무거웠다. 종교인들까지 시위에 가세하고 시위에 대한 정부의 진압 강도가 앰네스티 인권조사관의 우려가 나올 정도로 높아졌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접하고서는 좌불안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여성학대회의 외국인 참가자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개회식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베트남의 한 변호사는 한국에서 온 기자임을 밝히자, 서울 시위 소식에 큰 관심을 보였다. 유모차를 몰고 시위에 나선 주부들의 사진을 봤다는 그는 왜 그들이 거리로 나섰는지 꼬치꼬치 물었다. 그는 특히 40만~50만 군중이 참여하는 엄청난 규모로 커진 시위를 촉발시킨 것이 어린 여학생들이었고, 이어 여성들이 시위의 중심이 됐다는 것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대회 참가자 가운데 촛불시위에서 여성의 역할에 관심을 보이는 이는 그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이뤄진 여성들의 유대와 연대가 오프라인 공간으로 이어져 집단적 저항운동을 만들어낸 방식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또 여성들이 중심으로 진출하면서 시위의 양태가 이 비폭력적인 ‘축제’와 사회운동의 결합으로 진화한 것에 대해서도 감탄하며 한국 여성들의 역동성에 경의를 표시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2008년 여름을 역사는 어떤 이름으로 기록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시민으로서의 주체의식을 지닌 새 여성의 탄생’은 반드시 그 기록의 한 장을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여성사는 촛불시위 이전의 여성과 그 이후의 여성을 구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여성들이 공적 가치를 위해 중심에 서서 외쳤던 기억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움츠렸던 과거의 기억을 탈각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은 어떻게 감연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 아이를 낳아 기르고 돌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에 관심이 더 많고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 내던져지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자극했고, 시위는 그에 대한 분명한 거부선언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여성들의 의사를 최고 정책 결정 과정에 전달하는 장치가 충분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먹을거리의 위험성에 좀더 예민한 여성의 시각이 반영될 수 있었더라면 쇠고기 검역기준의 완화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더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었을 터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사태는 이명박 정부가 취임 초부터 여성을 배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예견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부엔 여성 각료라곤 여성부 장관이 유일하다. 그나마도 겨우 명줄만 붙여놓은 것이어서 실질적 힘을 발휘하기엔 역부족이다.
‘평등은 유토피아가 아니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마드리드 세계여성학대회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된 사회일수록 삶의 질이 떨어짐을 증언하는 각종 연구결과들이 발표됐다. 이네 알베르디 알롱소 유엔여성개발기금 대표 역시 기조발표에서 양성 평등 기반을 구축하는 것만이 지속 가능한 사회의 토대가 된다며 각국 정부에 책임 있는 조처를 촉구했다. 촛불항쟁은 그 길을 이미 걷기 시작한 집단적 지혜의 분출이 아닌가.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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