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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대한민국이 안 보인다

등록 2008-06-15 20:59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 논설위원
권태선칼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은 물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9개월 만에 열린 북-일 양자회담에서 북한은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를 약속했고, 일본도 북한에 가했던 제재의 일부를 해제하기로 했다. 일본 외무성 관리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에 일본은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것이라 시사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성 김 미 국무부 북한과장이 협상 결과에 만족했다고 밝힌 것을 보면 북한의 핵 불능화와 그에 수반하는 테러지원국 해제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만이 아니다. 독립론으로 중국과 갈등하던 대만도 새 정권 등장 이후 대륙과 대표사무소를 교환하기로 하는 등 본격적인 협력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한국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도 집권하자마자 미국·일본·중국 등 주변국 외교에 나서긴 했다. 그러나 전략적 동맹으로 관계를 격상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자찬했던 한-미 정상회담은 쇠고기 파동이란 후과를 낳았고, 과거를 묻지 않겠다며 일본 국왕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대가는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기술하도록 교과서 검정 지침을 수정하려 한 일본 문부과학성의 움직임이었다. 중국 방문에선 한-미 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산물이란 설교를 듣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이보다 더 심한 것은 북한과의 관계다. 지난 정부의 대북관계 성과를 인정하지 않은 채 상호주의만 주장하다 대북 식량지원도 국제기구를 통해서 해야 하는 지경에 처하게 됐다. 믿었던 미국과 일본이 대북관계 개선에 앞장서자 다급해진 우리 정부는 과거 남북이 합의한 선언들의 이행을 협의할 용의가 있다며 북한에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북한은 꿈쩍도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부의 대북정책은 갈피를 잡기도, 신뢰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남북이 합의한 선언 이행을 논의하자면서도 북한이 인정을 요구하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해선 직접 언급을 피한다. 또, 6·15 선언을 ‘이적행위’라고 규정하는 대북 강경론자를 통일교육원장 후임으로 사실상 내정했다. 김대중평화센터가 연 6·15 공동선언 8주년 기념식에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참석했지만, 참석에 부정적이었던 청와대의 간섭으로 연설 내용이 대폭 수정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러고도 북한이 현 정부를 믿고 손을 내밀기를 기대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안일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을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인사 전횡에 대한 비판을 받고 물러난 박영준 전 비서관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고 있는 청와대 내 특정 비서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 때문에 통일부 장관이나 외교안보수석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다른 이념적 기반을 가진 정당 출신의 대통령에게 이전 정권의 정책을 그대로 승계하도록 요구하는 건 무리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실용을 정책의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실용이란 이념이나 명분을 떠나 무엇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쓸모 있고 도움이 되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한다는 뜻일 터이다. 그렇다면, 모든 주변국들이 화해와 관계개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물을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념을 넘어선 진짜 실용의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그래야 6·15 선언과 10·4 정상합의를 넘어서는 이명박식 새로운 대북정책도 나올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도 찾을 수 있다.

권태선 논설위원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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