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잠든 아이처럼 포근하게 누운 섬, 그 발치에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영목에서 비탈을 오르면 월고지, 월고지에서 시례, 헌말을 지나 패총박물관을 끼고 서쪽으로 꺾어 숭어둠벙, 작은 장돌에 이르면, 갑자기 바람은 수상해진다. 오죽 바람이 심하고 모래가 날렸으면 이름이 ‘바람모래’였을까마는, 세월의 풍상은 그것을 곱디고운 바람아래 해수욕장으로 다시 빚어냈다. 장돌·장삼 해수욕장이 이어진다.
장삼의 만 건너편 해수욕장이 샛별이다. 대개는 금성을 떠올리겠지만, 실은 바다를 막아 조성된 새 벌판이 샛별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샛별 앞바다 또한 바람이 극성한지라, 조선조 조공 배들이 그 앞을 지나다 수없이 좌초했다. 뱃사람에게 지옥사자와도 같은 것이 쌀썩은여다. ‘여’란 물의 드나듦에 따라 드러나고 잠기는 기암괴석. 얼마나 많은 배가 좌초해 얼마나 많은 쌀이 썩었으면 그런 이름이 나왔을까.
다시 샛넘어 체다리꼴 목밭 아랫말 곱돌고개 지나 서쪽으로 큰바탕 띠밭머리를 지나 두어 고개 넘으면 꽃지가 나온다. 순전히 모래밭이니 꽃이 핀다면 해당화뿐이겠지만, 꽃 가득한 둠벙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밤마다 고기잡이 불(어화)이 작은 포구의 밤을 밝혔다 하여 그리 지어진 것이리라 추정한다. 꽃지와 잇닿은 곳이 본시 절이 있던 갯가라 하여 절개였으나, 젓개로 변하더니 지금은 방포가 되었다. 두어 마장 위쪽의 작은먹뱅이엔 두에기 해수욕장이 있고, 먹뱅이 참샘골에 이르면 바깥 바다라는 뜻의 밧개 해수욕장이 있다. 섬 동편 천수만 쪽엔 안 바다라 하여 ‘안개’가 있다. 두여 해수욕장을 거쳐 구억말에 이르면, 기계로 수문을 여닫았다 하여 틀못이(기지포)란 이름의 해수욕장이 있고, 삼봉 해수욕장을 지나면 섬 북단인 백사장 해수욕장이다. 해안 전체가 기암절벽이 칸칸이 나눈 모래밭인 셈이다.
이곳은 육지의 일부였다. 바람 많고 암초투성이인 밧개 대신 잔잔한 안개(천수만)로 조공선이 항해하도록, 조선 인조 때 운하가 생기면서 섬이 되었다. 백사장 건너편의 작은 포구 ‘드르니’는 그 흔적이다. 운하 개통으로 물이 안팎으로 드나들고, 사람과 물자가 오간다 하여 드르니라는 이름으로 번성했는데, 연륙교와 함께 쇠락했다. 지금은 이름만으로, 섬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이쯤에서 하나만 묻자. 이 섬이 안면도라는 것은 꽃지에 이르러 눈치챘을 터이고, 그러면 이 섬이 포함된 국립공원의 이름은 무엇일까? 참고로 섬과 바다로 이루어진 다도해와 한려수도는 ‘해상’국립공원이다. 이 아름다운 곳에 기름유출 재앙을 초래한 삼성중공업을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의 자연문화유산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하기 위함이다.
뭍으로도, 몽산포와 달산포 청포대 등 해안선은 꿈 꾸듯 이어진다. 한몸인데도 아득하니 너른 탓에 세 이름을 얻었다. 근소만 남쪽으로는 연포, 갈음이 해수욕장이 있는데, 길목의 어름골, 새골, 여우섬, 앞뒤 갈음이, 들뜸머리 따위의 이름이 정스럽다. 근소만을 사이에 두고 갈음이와 마주보는 해수욕장이 파도리. 아래로는 아치내 통개가 있고, 위로는 고기 반 물 반이었다는 어은돌 해수욕장, 모항을 거쳐 만리·천리·백리·십리포와 구름포 해수욕장이 이어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해안이 눈부시니 이름 또한 빛났을 게다. 허나 구성진 우리말과 글이 없었던들 어찌 그런 이름 얻었을까. 하나 더 묻자. 국보 308점 가운데 국보 70호는 무엇일까. 새 정부 영어정책이 소리 없이 죽이는,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숭례문이 왕조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어린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그 앞에서 눈물짓는 이는 왜 없을까?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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