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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칼럼] 무엇이 문제인가?

등록 2007-12-16 18:45수정 2007-12-16 19:42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칼럼
어째서 7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의 질을 악화시킬 사람을 더 지지하며, 400만 농민은 왜 완전한 시장개방을 추구하는 후보를 선호하며, 시장 상인들은 대형할인점이 지원하는 후보에게 열광하며, 중소기업인은 재벌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후보를 대변하고, 하층민들은 복지국가를 기피하는 후보를 선호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중산층·서민 대중은 자기 배반의 길을 선택하려는가.

때늦은 반성이다. 투표일은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누구나 공감할 답도 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한 반성이 없이 여권은 남은 기간이라도 최선을 다할 수 없으며, 선거 이후 예상되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견제할 구심 형성도 불가능하다. 물론 반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세 한탄이거나, 목전의 파국에 대한 책임 회피용 임시방편뿐이었다.

통합신당의 공동선대위원장들이 차례로 뱉었던 푸념들은 상징적이다. 국민 노망론이나 가짜 유권자론 따위가 그렇고,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라는 것이 그랬다. 탈세, 위증교사, 위장전입, 위장취업, 부동산투기 의혹, 거짓말 등 온갖 반서민적 행태를 보인 후보를 왜 서민 대중이 지지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어 하는 푸념이었겠지만, 제 눈의 들보를 살피지 못한 탓에 제 발등만 찍는 결과를 초래했다.

패배주의 논란은 그럴듯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회피한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이 논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거론한 이래, 현 사태의 본질인 양 너도나도 입에 올렸다. 시민사회 원로는 물론 종교계 중진들까지 나서서 이른바 민주진보세력의 패배주의를 지탄했다. 급기야 정동영 후보가 다른 후보에게 단일화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했고, 문국현 후보도 정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며 패배주의 극복을 호소했다.

내용인즉 민주진보세력의 지리멸렬과 분열은 패배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범여권이 일치단결해 설득을 한다면, 이미 등을 돌린 노동자 서민 대중이 돌아설까. 웃기는 소리다. 서민 대중을 그저 말만 잘 하면 넘어가는 무지렁이로 보고 하는 말이다.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고 생각하고, 돈 몇 푼만 더 벌면 사기꾼도 거짓말쟁이도 좋아하는 부류라고 얕잡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언컨대 그들은 부패·사기·거짓말을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무능하고 오만하며 저 혼자 잘난 척하는 집단을 거부할 뿐이다. 저희를 배반한 자를 용서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현 정권을 두 번씩이나 선택하고 지지했다. 탄핵 정국에서 부당한 자들에게 궤멸적 패배를 안겨준 것도 그들이다. 지금도 그들은 저 칼바람 부는 겨울 태안 바닷가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기름을 걷어내고 있다.

이들을 배반한 건 다름 아닌 현 정권이다. 권력을 시장과 재벌에 넘기고, 신자유주의와의 대연정을 추구했다. 균형 대신 불균형을, 중소기업 대신 재벌을, 공동체 대신 시장을, 공존 대신 경쟁을 선택했다. 그 결과 노동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졌으며, 빈익빈 부익부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심화됐다. 정치는 도덕이 아니다. 결과는 과정 이상으로 중요하다. 도덕군자 백이숙제와 달리 반역을 선택한 주 무왕은 옳았다.

패배를 수용하라는 게 아니다. 아무리 바빠도 신발을 거꾸로 신고 뛸 순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 시계가 거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예상되는 파시즘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철저한 반성과 책임지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 했고, 민심조석변(民心朝夕變)이라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기대한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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