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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답답한 것은 유권자다

등록 2007-11-27 18:11

권태선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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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칼럼
공식 선거전 시작을 앞둔 그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전국선대위원장 회의에선 비비케이(BBK) 주가조작 사건 등 각종 비리 의혹에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큰 격차로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개탄이 이어졌다고 한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이 계속 앞서는 이상한 나라”라는 이야기에서부터 “국민이 노망 든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다”는 문제 발언까지 튀어나왔다. 비비케이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거짓말 행진을 비롯해 탈세를 하고자 자식들을 위장으로 취업시키기에 이르기까지 치명적 도덕적 약점이 제기됐는데도 이 후보가 부동의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제1당의 후보는 그 3분의 1도 안 되는 지지율에서 답보하는 상황이니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답답하기로 치면 유권자들이 더하다. 요즘 들어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차라리 기권하겠다는 이야기도 많다. 꼭 투표하겠다는 적극 투표층의 비율이 5~6%포인트나 줄어들고, 선거 막판으로 가면서 오히려 부동층이 늘어나고 있다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이 느끼는 답답증을 방증한다.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이 후보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서도 달리 선택할 후보가 없어 고뇌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책임은 통합신당에 있다. 지난주말 벌인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어느 정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가장 낫겠느냐’는 물음에 한나라당을 꼽은 비율이 46.6%로 통합신당(9.8%)과 무소속(7.2%)을 압도했다.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론이 다른 어떤 것에 우선하는 기준인 셈이다. 그러므로 집권여당이 우선적으로 할 일은 국민과 나라를 탓하기 전에 왜 이 정도로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됐는지 자성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참여정부 들어 더 심해진 사회 양극화와 부동산값 폭등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큰 과오는 국민의 마음을 사는 데 실패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얼마 전 한 시민단체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참가자 중 한 분이 회의 참고자료에 포함된 ‘2006년 인권단체연석회의의 20대 요구안’을 보고 우리 인권단체들이 병이 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 말씀을 듣고 문제의 요구안을 들여다보니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 폐기, 최저임금과 최저생계비 현실화, 장애인 교육지원법 제정 등 요구할 만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인권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분에게조차 그 요구안이 생경했던 것은 ‘민중 생존권을 위협하는 노무현 정권 퇴진’처럼 인권운동 밖의 사람들에겐 잘 다가가지 않는 격한 표현이 다수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정당성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런 방식으론 일반 국민을 설득하기는커녕 운동과 일반 국민 사이의 거리감만 넓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지난 5년 동안 정부와 여당이 해 온 일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물론 현정부와 여당이 한 일 가운데 남북 정상회담 등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한 일도 없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 이행과정에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자신들의 외연을 확대하는 대신, 자신들만이 옳다고 고집함으로써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 참담한 결과가 10%도 안 되는 정당 지지율이다.

이제라도 참담한 상황을 돌파하고 도약하기 위해선 비상한 방법이 필요하다. 이른바 범여권 후보들이 개인과 분파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자기희생적 결단을 내림으로써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상대 후보가 도덕성 문제로 무너지는 것을 기다리는 대신 마음 붙일 곳 없는 유권자들을 끌어낼 감동의 프로젝트가 시급하다.

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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