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선 편집인
권태선 칼럼
2008학년도 대학입시의 내신반영률과 방식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대학들이 점진적 확대 계획을 내면, 내신 등급 간 점수 차를 달리 적용해도 용인할 수 있다고 교육부가 물러섰음에도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논란 과정을 보면 누가 교육개혁의 적인지는 분명해 보인다.
현재의 내신 중심 입시안은 대학입시가 중등교육을 지배하는 비정상적인 현실의 고리를 끊어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자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대학입학제도개선 특별위원회의 논의 과정에서 이 기본정신은 크게 퇴색했다. 당시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이인호 교수는 “내신 확대를 절대가치로 생각하는 세력 때문에 합리적인 대화가 안 됐다”고 주장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말로는 공교육이 중요하다면서도 실제로는 문제풀이를 잘하는 학생 이외의 우수 학생을 찾아낼 능력도 의지도 없는 교육부와 대학의 변별력 타령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미흡하나마 최대공약수로 만들어진 게 현재의 안이다.
내신 논란의 핵심은 학력 차가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며 엄존하는 “학력 차이 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평준화라고 하는데 이는 속임수”라고 한 이 교수의 발언에 요약돼 있다. 내신 1~4등급 동점처리 방침을 세웠던 대학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학력 차는 존재한다. 또 학력 차를 드러내지 않는 게 평준화도 아니다. 문제는 학력 차가 이 교수 말처럼 자연발생적인 게 아니라 주변 교육여건과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또 학력 차 논란의 중심에 있는 특목고는 어떤 학교인가. 설립 목적인 특수목적과 관계 없는 입시전문 학교임을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런데도 학력 차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기제를 무시하고, 거짓에 바탕해 운영되는 특목고 학생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입시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대학이 정상적인가.
내신 중심 입시안의 목표는 엄존하는 학력 차를 무시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교사와 학생을 교육의 중심에 세워 학생들의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고, 학력 차를 낳는 외적 요인의 영향을 줄여 나갈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게 평준화다.
한국 일부 대학들이 수능 성적 좋은 학생들을 차지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지금 신자유주의적 교육의 보루로 여기는 미국의 대학, 그것도 사립대학들 사이에서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워싱턴포스트>엔 세라로런스대학 총장의 기고문이 실렸다. 미셸 마이어스 총장은 우리의 수능 격인 에스에이티(SAT) 점수, 내신, 추천서, 작문 등의 전형요소와 입학 후 학업성취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에스에이티 점수는 상관관계가 낮을뿐더러 값비싼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만 유리하게 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2년 전부터 이를 사정 자료에서 제외했으며 그 결과 학생들의 성취도가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애머스트, 하버드 등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입학 사정에서 빈곤층 우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애머스트 대학의 경우 재학생의 4분의 3이 사회경제적 계층 상위 25% 안에 드는 반면 하위 25%에 속하는 학생은 3%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려고 이 대학은 입학생의 15% 정도를 연소득 4만5천달러 이하의 가정에서 뽑고 있다. 성이나 인종별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계급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학 나름의 노력이다.
반면 우리의 국립 서울대는 2005년과 2006년 신입생의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내신 위주의 지역균형선발 출신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 선발 학생들보다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해 놓고도 내신 위주 모집에 반기를 들고 있다.
권태선 편집인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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