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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칼럼] 미국화가 우리 사회의 대안인가?

등록 2007-06-03 18:12수정 2007-06-25 16:21

권태선 / 편집인
권태선 / 편집인
권태선칼럼
얼마 전 외교통상부의 한 관리를 만났다. 그는 “평소 <한겨레>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보도를 보곤 걱정이 생긴다”고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국민의 과반수가 지지하고 있는데 반대쪽 입장만 강조하는 게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반면 한 국책 연구기관의 기관장은 사견임을 전제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미친 짓”이라고 단언했다.

두 사람이 일치를 한 대목은 이 협정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으로 미국화를 유도할 것’이란 점이었다. 그러나 의견이 갈린 부분도 바로 이 지점, 미국화에 대한 평가였다. 미국형 사회는 자기 것은 자기가 책임지는 국민 개개인의 자립의식에 바탕을 둔 사회다. 그러다 보니 사회보장이나 소득분배에선 선진국 중 하위에 처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990년대 후반기 24개 회원국의 소득분배 불평등도(지니 계수)를 비교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0.337로 회원국 평균(0.309)보다 불평등도가 높았다. 2004년엔 0.45로 더욱 악화됐다.(미국 중앙정보국 자료)

그럼에도 해방 이후 줄곧 우리 사회가 미국의 압도적 영향 아래 있고 여론주도층의 상당수가 미국 유학파이며, 주류층의 대다수가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신분 상승을 이룬 경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이 경쟁 중심의 미국화에 찬성하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 대다수의 이해와 일치하며 그것만이 우리 사회의 대안인가는 또다른 문제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창회는 극빈 재학생 1~2명에게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주기로 했다고 한다. 이 대학 학생과장 이원우 교수의 설명을 듣고서다. “해마다 성적 불량으로 제적될 위기에 처한 학생들을 면담해 보면 1~2명 정도는 갑자기 집안이 파산하거나, 아니면 지방 빈곤층 출신으로, 자신의 생활비와 학비는 물론 심한 경우 가계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몰려 그렇게 된다. 이들은 가계를 책임지고 있어 군대 문제 때문에 휴학도 못 한다.” 장학제도도 이들에겐 남의 일이다. “서울법대의 경우 지난 학기 재적 학생 1300여명 가운데 320명이 교비장학금을 받았지만 80% 이상은 35만원 정도인 수업료 면제에 그쳤고 빈곤층에게 돌아가는 몫은 그 중에서도 일부”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흔히 서울법대는 치열한 교육경쟁을 뚫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의 최정상으로 여긴다. 그런데 온갖 어려움을 뚫고 최정상에 오른 학생들조차 이렇듯 경제적 이유로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누구도 경쟁이 생산성을 높이는 유효한 수단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원하는 누구에게나 경쟁의 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기회의 평등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위의 법대생의 예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아직 공정한 게임의 룰의 바탕이 되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 실제로 기회의 평등을 통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인 덴마크 등 북유럽 나라들의 경제성장률은 미국보다 높거나 비슷하다.

<한겨레>와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지난달 실시한 ‘국민 이념성향 조사’에서 응답자의 다수는 ‘세금을 더 거둬서라도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54.9%)거나 ‘종합부동산세 신설’(69.2%)에 찬성했다.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시한다고 해서 우리 국민이 미국식 사회를 지향한다고 판단하는 것은 단견이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했던 일본이 협정으로 강제이식될 미국식 시스템을 일본인들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2002년 협상을 중단했던 예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권태선 / 편집인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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