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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순칼럼] 한국 문화의 내부 파열

등록 2007-05-30 17:43

조순/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조순/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조순칼럼
나는 이 칼럼에서 한국 경제가 방향을 잃고 있다는 것을 여러 번 지적했다. 그러나 경제의 저성장에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는 문화 및 사회의 침하 현상이다. 여기서 문화라 함은 음악이나 미술·문학 등의 예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지적·도의적 성향, 사회통념, 관습, 가치관, 기호, 전통 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은 개발 연대 이후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반면, 사회와 문화는 오히려 침하된 감이 있다. 경제가 방향을 못잡고 있듯이, 사회와 문화도 방향을 상실하고 있다. 한국의 사회·문화는 지금 일종의 ‘내부 파열’을 겪고 있다고 나는 본다. 사회 내부에서 소리 없는 파열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법규와 그 유권해석이 항상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내부 파열의 파편이 어디로 튀느냐에 따라 멀쩡한 어제의 명사가 오늘은 죄인이 된다. 국민도 미디어도 내부 파열을 부추기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까닭없는 고통을 당한다. 사람들은 항심을 잃고 매일 흥분에 들떠 있다.

이러한 내부 파열에 감염된 문화를 치유해야 한다. 이것을 방치하면 나라는 계속 침하한다. 경제의 방향 상실과 문화·사회의 방향 상실은 표리의 관계에 있다. 정부는 이 두가지의 방향 설정을 확보할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작은 정부’가 구가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내부 파열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태에 있는 사회와 문화를 속수무책으로 방관해서는 곤란하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면 잘 된다는 환상 속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앞으로 모든 정책기조를 물량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인본주의적 견지에서 추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지상목표로 하지 말고 불행한 사람이 늘어나는 사태를 막는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고용의 증대이며, 이것을 위해 인력 수급의 균형을 가져 오는 프로그램을 수립해야 한다. 단순히 케인스식 총수요 조절로 고용을 늘리려 할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인 ‘미스 매치’를 줄이도록 인력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 인력계획에 따라 교육정책, 노동정책, 사회정책 등이 조절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나 사회·문화의 향상을 위해서나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교육산업은 그 양적 확대에 치중한 나머지 대표적인 부실 산업이 되고 있다. 교육의 부실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교육인 가정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동북아시아 일각에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달성하고 경제 경쟁에서도 중국과 일본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글과 한자를 병용해야 한다. 한글 전용을 가지고는 우리의 경제와 문화가 중국과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 나도 한글을 존중하지만, 나는 문화 국수주의를 가지고는 좋은 문화를 창조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한자 병용을 당장 시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한자를 가르치기를 선택하는 학교에는 그것을 허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하급학교에서도 학생의 선택 여지를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공장에서나 너무나 규율이 부족하다. 규율 없는 문화 속에서는 경제발전도 지속할 수 없고, 문화의 성숙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순/서울대 명예교수·전 경제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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