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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소탐대실 북한, 대탐실족 미국

등록 2007-04-20 17:47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칼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의문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과연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내렸는지, 또는 내릴 것인지 여부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주된 이유가 체제·정권 보장이라는 정치·군사적 목적에 있다고 보는 이들은 부정론에 가깝고, 대미 협상용으로 파악하는 이들은 긍정론으로 기운다. 6자 회담 추진자들은 전략적 결단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 채, 협상이 잘 진전된다면 북한이 결국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다. 조건부 긍정론인 셈이다.

북한은 2·13 합의 초기단계 조처 이행 시한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핵시설 폐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묶인 북한 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고의로 합의를 어긴 건 분명하다. 지난달 19일 북-미 비디에이 합의 이후 북한이 이 문제에 집착해 더 얻어낸 건 무엇일까? 북한 돈에 대한 동결을 푼다는 미국 재무부의 지난 10일 발표뿐이다. 하지만 국제 금융계는 지금도 여전히 북한 돈을 다루고 싶어하지 않는다. 북한은 미국이 아니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국제 금융계의 대우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실감했을 것이다.

북한은 많은 것을 잃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불신이 다시 커지고 있다. 조건부 긍정론은 주고받기식으로 도출된 6자 회담 합의 내용을 단계적으로 차질없이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작은 실천에서 출발해 핵 포기와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구축까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바로 6자 회담인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단계인 지금 북한이 신뢰 기반을 만들지 못하면 6자 회담 전체 틀이 흔들릴 수 있다. 방코델타아시아 문제는 상대적으로 작은 사안인 데 비해 대북한 신뢰에는 6자 회담 전체가 걸려 있다. 북한은 소탐대실의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정부는 조지 부시 행정부 임기 막바지인 내년까지 북-미 관계 정상화까지 간다는 큰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한세대 전 베트남전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중 수교를 전격적으로 추진한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새 길을 찾는 형국이다. 이런 전환은 남북을 포함한 동북아 나라들 대부분이 바라는 평화적 질서 재구축 방향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방법에서도 전적으로 환영받는 건 아니다. 미국이 뼈대를 결정하면 다른 나라는 내용에 불만이 있더라도 따라야 한다는 초강국 특유의 일방주의가 배어 있는 탓이다.

이런 태도는 불필요한 장애물을 만들어 전체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비디에이 문제에서 미국은 동결된 북한 돈 처리방침만 결정하면 사태가 끝날 것으로 잘못 판단해, 2·13 합의 이행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큰그림만 보고 가다가 발밑의 돌부리에 걸려 일시 좌초된 꼴이다. 대탐실족 양상이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에 대한 판단은 6자 회담의 기본성격까지 다르게 보도록 만든다. 회담 유효성을 믿는 긍정론자와 달리 부정론자는 북한이 국제 압박을 일시적으로 피하려는 전술적 동기로 회담에 응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2·13 합의가 이행되고 나면 어느 쪽이 맞는지를 가리는 ‘진실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진실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칠 변수는 신뢰이고, 신뢰의 깊이는 자기실현적 사고와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를 믿고 자신의 몫을 성실하게 실천해야 신뢰가 더 탄탄해지는 법이다. 모든 6자 회담 참가국들은 작은 것 또는 너무 멀리 있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구체적 성과를 축적해 가는 ‘무실유익’의 길을 가야 한다. 특히 북한이 명심해야 할 얘기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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