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칼럼
6자 회담 2·13 합의는 동북아 역사상 전례 없는 대화·협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누구와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6자 회담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와 새로운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체제 창출이다. 이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 곧 북한 핵 무기·물질·시설 폐기의 핵심 당사국은 북한과 미국이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이유로 핵 계획을 진전시켜 왔고, 미국은 이 계획이 자국 안보의 핵심 요소인 핵 비확산 체제를 흔들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북-미 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핵문제도 풀리지 않는다. 다른 네 나라 역시 북한 핵을 용납하지 않지만 문제 해결 능력은 제한적이다. 다섯 실무그룹 가운데 북-미 관계 정상화 그룹에 더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비핵화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평화체제 구축에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먼저 동북아 평화체제의 경우, 각국의 국력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 미국 중앙정보국의 <세계 팩트북> 최신판을 보면, 지구촌의 연간 총생산 규모는 구매력 기준으로 60조6300억달러다. 미국이 12조3100억달러로 20.3%를 차지하고, 다음이 중국(8조8830억달러, 14.7%)이다. 일본(4조250억달러, 6.6%)은 3위, 한국(1조1010억달러, 1.8%)은 12위다. 한·중·일을 합치면 14조90억달러(23.1%)로 미국이나 유럽연합(12조1800억달러, 20.1%)을 훨씬 앞선다.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해양세력인 미·일과 대륙세력인 중·러가 맞서는 냉전식 틀이 시대착오임은 물론이고, 미국의 주도권 관철을 전제로 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방식도 현실성이 없다. 초점은 지난 1세기 동안 적대적 대립과 불안한 제휴를 되풀이해온 미-중 관계의 안정적 재정립이다. 평화 유지자로서 한국의 위상을 두고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체는 남북이다. 평화체제는 평화 유지에 필요한 모든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적 요소를 포괄하지만, 제도적 측면에서는 평화협정 체결·이행이 핵심이다. 평화협정은 공식적인 전쟁 종식뿐만 아니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과 전쟁 책임 마무리 등 전후 청산, 군축, 대결을 전제로 만들어진 각종 규정 개폐 등을 포함한다. 반세기 이상 한반도에서 벌어진 어두운 과거를 정리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닦는 기본문서인 것이다. 한반도의 임자인 남북이 주체가 되는 건 당연하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한반도 문제 논의에 참여할 수 있고, 동북아 평화구조와 관련되는 한 참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반도의 운명과 직결되는 사안에서는 당사자 원칙이 분명히 지켜지고 미·중은 부차적 지위에 머물러야 한다.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 협의를 시사한 최근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은 적절하지 않다. 두 나라가 협상할 문서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수교의정서다.
지금 시작되는 다차원적 논의의 결과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동북아 질서를 가름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큰틀을 짜고 방향을 잡아나갈 최고위급 회동이 필수적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6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이 그것이다. 다음달 말께 열릴 6자 외무장관 회담이 2·13 합의 이행을 담보하는 구실을 한다면, 6자 정상회담은 전체 논의 수준과 속도를 대폭 높이는 토대가 될 것이다. 또한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와 함께 평화체제 논의를 내실화하려면 남북 정상회담이 늦지 않은 시기에 열려야 한다. 두 정상회담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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