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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누가 2·13합의를 두려워하나

등록 2007-02-23 19:01

김지석/논설위원
김지석/논설위원
6자 회담 2·13합의 이후 벌어지는 크고작은 소동은 북한 핵 문제 해결방식과 각국 안 권력다툼의 함수관계를 잘 보여준다.

먼저 미국을 보자. 네오콘인 엘리엇 에이브럼스는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이라는 고위 공직에 있으면서도 이 합의를 비난하는 전자우편을 정부 관리들에게 보내 빈축을 샀다.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의 전격 사임도 합의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유엔대사로 있다가 얼마 전 물러난 존 볼턴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그간 네오콘의 대부 구실을 해온 딕 체니 부통령의 보좌관들도 체니의 침묵에 당황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백악관은 “북한에서 외교의 성공을 입증한 마당에” 이란에 대해선 왜 그러지 못하겠느냐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지난 몇 해 동안 지구촌을 치열한 갈등으로 몰아넣은 악의 축 논리는 슬며시 폐기한 듯하다. 이번 회담에서도 미국은 북한 정권에 대한 정서적·도덕적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경 대외정책을 주도해온 네오콘들이 중동 정책을 놓고 백악관과 충돌한 데 이어 이젠 북한 정책에서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모습이다. 2·13합의는 네오콘 권력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이다.

일본은 다분히 신경질적이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부각시키려다 실패한 아베 신조 정권은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들까지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합의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려는 미확인 보도가 잇따른다. 합의 이행과 함께 일본의 고립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이를 우려하면서도 대북 정책 재검토에는 소극적이다.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졌으나 대북 강경론은 여전히 자민당 권력의 중요한 주춧돌이다.

2·13합의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심한 집단은 한국 보수세력이다. 이번 합의는 분명히 초기단계 이행조처인데도, 이들은 핵 무기에 대한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시비를 건다. 역시 초기단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대북 송전 제안을 부각시켜 한국의 비용 부담 문제를 왜곡한다. 북한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확인하는 국정원장의 통상적 발언도 합의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소재가 된다.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그렇듯이 미국이 먼저 증거를 제시해야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정도는 아니라고 밝힌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안보연구소 소장의 발언 또한 무시된다.

보수세력이 가장 우려하는 건 대통령 선거에 끼칠 영향일 것이다.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된다면 ‘참여정부=친북반미’라는 공격은 힘을 잃게 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 시작되고 남북 또는 4개국 정상회담까지 열리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북한 핵 문제는 대선을 좌우할 권력다툼의 한가운데 있다.

북한 집권세력이 분열할 개연성도 상당하다. 선군정치 체제에서 기득권을 쌓아올린 강경파들은 핵 포기 대가로 얻는 과실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면 심하게 저항할 것이다. 회담 참가국들은 이런 가능성에 대한 대책도 세워둬야 한다.

2·13합의를 겁내는 세력은 곳곳에 있다. 두려움의 실체는 현상 변화와 기득권의 손상이다. 이들은 부시 행정부의 ‘배신’에 당혹해 하면서 합의 이행이 실패할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건다. 하지만 한번 방향을 잡은 역사의 큰 흐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2·13합의는 동북아와 관련된 여러 현안을 한꺼번에 꺼내는 판도라의 상자이면서도, 평화와 공동번영의 새 질서로 향하는 가장 현실적인 길의 입구임을 명심하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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