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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그들을 고발하고 싶다

등록 2007-02-20 17:02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칼럼
드레퓌스 사건 속에서 에밀 졸라는 “대중의 양심을 흐리게 하고, 민족 전체를 방황하게 하는 범죄를 저지른, 저 인간 몰이꾼들, 노회한 논쟁가들, 광기어린 선동가들”(<나는 고발한다>)을 대중에게 고발했다. ‘광기와 무지와 기괴한 상상력, 비열함, 종교재판, 다수의 폭압이 판을 치던 끔찍한 상황을 초래한’ 군부, 행정부, 언론 권력이 대상이었다. 이 가운데 언론은 광기를 확산시킨 주범으로 지목했다. 관용의 정신을 파기하고, 반유대주의의 광기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언론이 광기를 퍼뜨리고, 그 결과에는 무책임하며 반성하지 않기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정치인은 선거로 심판받고, 사법부는 역사의 법정에서 심판받고, 행정부는 정책으로 그 성패가 가름된다. 최소한의 심판 장치가 있다. 그러나 언론 권력은 예외다. 반유대주의 광기를 퍼뜨리건, 정치권력의 주구 구실을 했건, 특히 전쟁을 무릅쓰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압박했건, 그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6자 회담 2·13 합의는, 북핵 해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1994년 1차 북한 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압박과 봉쇄는 상황을 악화시켰고, 북-미 직접 대화와 협상은 돌파구를 열었다. <워싱턴포스트>가 오래 전 지적했듯이 2차 북핵 위기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서부터 시작했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는 플루토늄은 대부분 부시가 압박정책을 펴는 동안 생산됐다. 미사일 시험발사나 핵실험도 부시의 압박 속에서 이뤄졌다. 압박정책 속에서 부시는 의회 권력을 민주당에 넘겼다. 결국 직접대화로 돌아섰다.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까지, 부시는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

우리의 수구언론은 시큰둥했다. ‘과거핵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느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 계좌나 풀어주는 것 아니겠느냐’느니 고춧가루 뿌리는 데 열심이었다. 한 신문은 94년 제네바 합의의 재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침팬지 수준의 기억력만 갖고 있다면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동안 제네바 합의에서 한걸음도 진전하지 못했던 것은 부시가 앞장서고, 수구언론이 환호했던 압박·적대정책 탓이었다. 닭 쫓던 개 꼴이 되었으니 그 심정 알만하지만, 지나쳤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이들의 주장은 하나였다. 햇볕정책은 파탄났으니 파기하고 압박정책을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남북의 유일한 신뢰보장 장치였던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파기하고, 인도적 지원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제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보인 그들의 반응은 상징적이었다. ‘시장터의 잡상인만큼도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머저리’(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시장 상인에게 죄스럽다), 혹은 ‘아무리 원칙 없는 정권이라도 이렇게 국민을 우롱할 수는 없다’고 개탄했다. 그렇게 멸사봉공했는데, 부시는 배반했다. 그를 내심 친북 좌파로 낙인찍었는지 모를 일이다.

극우 논객 조갑제씨는 노태우 정부 시절 ‘언론독재 타도의 길’이란 글을 썼다. “언론은 그 속성상 무책임하다. 숱한 오보를 하고서도 정정은커녕 사과 한 마디 없다. 비판을 위한 비판만 되풀이하고, 여론과 정부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가 일을 그르쳐놓고서도 또다른 구실을 찾아서 난도질 한다.” 겉보기에 ‘나는 고발한다’와 비슷하다. 그러나 졸라가 정의와 관용 정신을 상실한 언론을 비판했다면, 조씨는 군사정권의 적자인 노태우 정부를 두둔하고 비판언론을 매도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글은 수구언론을 고발하고 맹성을 촉구하는 격문으로 읽힌다. 아이러니다.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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