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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북한 핵 ‘비둘기-비둘기 게임’

등록 2006-11-29 18:49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칼럼
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대립은 흔히 치킨(겁쟁이) 게임에 비유된다. 실제 그런 면이 있다. 북한은 미국이 물러설 거라고 생각하고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이를 무시한 채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면서 북한의 굴복을 강제한다. 몇해 동안 그러다 보니 북한은 핵 실험을 강행하고 미국 안 강경파는 공공연하게 북한 붕괴론을 거론하는 데까지 왔다. 이런 구도에서는 어느 한쪽이 포기해야 사태가 진정된다. 특히 곧 열릴 6자 회담을 앞두고 비관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치킨 게임의 기원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게임이다. 두 대의 자동차가 도로 맞은편에서 서로 돌진한다. 먼저 핸들을 꺾는 겁쟁이가 패배자가 된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실감나게 그렸듯이, 두 소년이 기차가 달려오는 레일 위에 누워 오래 버티기를 하는 것도 치킨 게임이다.

매-비둘기 게임도 치킨 게임의 하나다. 어느 동물 집단이나 제한된 먹이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 가운데는 공격적인 개체와 그렇지 않은 쪽이 있다. 양쪽을 매와 비둘기라고 하자. 매와 매가 부딪치면 싸움이 일어나 먹이 확보는 고사하고 둘다 상처만 입는다. 매와 비둘기가 만나면 매가 먹이를 다 갖고, 비둘기끼리는 절반씩 나눠갖게 된다. 서로 양보할 때 먹이의 절반씩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 자동차 게임과 크게 다르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많은 일은 매-비둘기 게임의 양상을 보인다. 매와 비둘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동일인이 상황에 따라 매도 되고 비둘기도 된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대립 역시 자동차 게임이 아니라 매-비둘기 게임에 가깝다. 타협할 수 있는 길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기도 하다. 지난해 발표된 9·19 공동성명의 기본정신도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자동차 게임처럼 보였던 가장 큰 이유는 북한과 미국 모두 핸들을 꺾지 않고 똑바로 돌진할 것을 주장하는 강경파가 국면을 주도한 데 있다.

이번 6자 회담 재개 합의는 쉽지 않았다. 핵 실험 이후 북한의 국제적 고립과 부시 행정부에 대한 국내외 여론 악화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 것은 분명하다. 불안한 균형이다. 회담 자체에 회의적인 원심력이 여전히 적지 않다. 회담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매-비둘기 게임의 형태를 ‘비둘기-비둘기 게임’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우선 한쪽이 매의 모습을 보일 때 상대도 같은 태도를 취할 확률이 아주 높음을 양쪽이 인정해야 한다. 아울러 매끼리 싸울 경우 예상되는 피해가 아주 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협상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상황은 이런 조건에 잘 들어맞는다. 북한은 핵 실험 다음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 더 강한 핵 실험이나 핵 물질 해외 이전은 파국을 앞당길 것이다. 미국 강경파도 막연한 북한 붕괴론을 전파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 정말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면 이라크 이상의 저항을 각오해야 한다. 해결책은 결국 비둘기-비둘기 게임뿐이다. 북한과 미국에서 비둘기들이 힘을 얻도록 한국과 중국이 적극 뒷받침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프리드리히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지혜의 여신)는 밤이 돼야 날기 시작한다’고 했다. 6자 회담 참가국들은 지난 몇해 동안 실패를 거치면서 충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선까지 왔다. 이제 올빼미가 마음껏 날 수 있게 할 때다.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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