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칼럼
좁은 원자핵 속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강한 핵력으로 결합돼 있다. 그런데 센 힘을 더하면 결합이 풀리면서 많은 핵이 연쇄적으로 무너져내린다. 잠수함이 수압으로 찌그러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를 통상의 폭발과 대비시켜 ‘내파’(implosion)라고 한다. 아주 큰 중력은 10초 이내에 지구만한 별을 경기도 크기로 내파시키며 엄청난 에너지를 내뿜는다. 핵폭탄도 이런 원리를 활용한다.
“지금 김정일의 모든 외환자금을 끊어 … 북한 정권을 내파시킬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 내 생각엔 2개월이면 ….” 미국 하원 비확산위원회 위원장인 에드워드 로이스가 최근 〈엔비시〉(NBC) 방송에 나와 한 이 말은 미국내 강경파의 심중을 대변한다.
내파론은 정권교체론의 일종이다. 이라크 침공처럼 직접 군사력을 동원하는 대신 강한 외부 압력으로 자체 붕괴를 유도한다. 김정일 정권 정도는 어렵지 않게 날려버릴 수 있다는 강국의 오만이 배어 있다. 비슷한 얘기가 중국에서도 떠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국에 억류해 북한 정권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120여년 전 청나라의 흥선대원군 납치를 연상시킨다. 김 위원장이 그래서 중국 방문을 못 한다는 말도 있다.
내파론도 정권교체론도 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차근차근 그 쪽으로 가고 있다. 미국이 북한의 잇따른 도발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금융제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강화에 힘을 쏟는 주된 이유도 결국 북한 정권이 견뎌내지 못할 것으로 보는 데 있다.
북한은 미국에 직접적 위협이 되지 못한다. 북한 미사일은 한반도 근해를 벗어나지 못했고, 지난 9일 핵실험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 핵 물질·기술의 이전 불용을 강조하는 데는 그것만으로 북한의 잠재 위협을 통제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다. 나아가 북한이 내파하더라도 멀리 떨어진 미국에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침공 이후 이라크를 재건하겠다고 했으나 이 나라는 곧 내파했다. 숨진 이라크인만도 수십만명이다. 국토와 국민은 갈래갈래 찢겨 종교와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2600만 인구 중 160만명이 이 나라를 떠나고 다른 150만명은 나라 안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고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은 말한다. 내파한 에너지는 증오로 바뀌어 세계는 훨씬 더 불안해졌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내파한다면 모든 관련국이 더 위험해지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북한의 이라크화’다.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북한이 내파하지 않을지라도, 대치상태가 오래갈 경우에는 그에 맞먹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대안은 항상 있다. ‘북한의 베트남화’다. 10여년 치열한 전쟁을 치른 미국과 베트남은 한 세대 만에 화해했으나, 북한과 미국은 두 세대가 지나도록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베트남이 될 수 있다. 북한은 개방·개혁 의지가 있고,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은 도울 준비가 돼 있다. 문제는 북-미 관계다. 미국 강경파의 다수는 북한의 변화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상당수는 북한이라는 적이 사라져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결과가 지금의 핵 위기다.
내파한 별은 블랙홀이 돼 모든 걸 집어삼킨다. 북한의 내파를 바라는 이들은 자신만은 그 위험에서 벗어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늦기 전에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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