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칼럼
얼마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아시안컵 여자축구 준결승전에서 여성 심판이 북한 선수들에 에워싸인 채 이단 옆차기를 당했다. 심판이 이 선수에게 퇴장을 명령하자 후보선수들까지 달려나와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심판은 결국 경찰 호위를 받아 운동장을 떠났다.
계기는 편파 판정 의혹이다. 이 심판은 북한이 경기 종료 2분 전에 넣은 골을 오프사이드로 판정해 중국에 1 대 0으로 지게 만들었다. 앞서 북한에 페널티킥을 줄 수 있는 두 차례 상황도 외면했다. 그러나 북한 선수들의 행동은 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 선수는 관중석에 물병을 던졌다. 북한 언론도 자신들의 억울함만을 집중적으로 전했다.
북한 선수들의 이런 모습은 북한 정권이 핵·미사일 문제에 대응하는 행태와 많이 닮았다. 북한은 억울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국제사회의 눈에 띄는 건 북한의 도발적인 대응이다. 지난 7월 동해 쪽으로 쏜 미사일이 그렇고, 지금 유력하게 관측되는 핵 실험 준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북한이 외골수인 건 아니다. 지난 26일 나온 외무성 담화는 “9·19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핵계획 포기를, 미국은 평화공존을 공약했고, 이 합의가 이행되면 우리가 얻을 것이 더 많으므로 6자 회담을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심판만 공정하면 경기에 충실하고 싶다는 뜻이다. 거꾸로 공정한 경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면 경기를 포기할 수도 있음을 함축한다.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 완화 또는 해제가 공정성의 시금석이라고 본다.
패권국인 미국은 경기 참가자이면서 동시에 심판 구실도 한다. 일방적인 이라크 침공과 이스라엘 편향 중동정책처럼 잘못된 판정과 의도적인 편파 판정도 적잖다. 때로는 경기 규칙까지 마음대로 바꾸려 한다. 그래서 대북정책의 진정한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 뒤에 미국이 북한 정권의 교체를 추진하지 않을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북한과 미국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대화를 말하면서도 대결을 준비하고, 협상을 내세우면서도 뒤에서는 적대감을 키운다. 핵심 권력자들이 근본주의적 사고에 젖은 까닭에 스스로는 대화의 구심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입으로는 파국을 피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몸은 그쪽으로 움직인다. 파국의 시작은 북한의 핵실험 강행과 미국의 대북 무력봉쇄다.
한국과 중국은 양면적이어선 안 된다. 대화·협상 노선을 분명히하고 모든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정부 일각에서 얘기하는 상황관리론·현상유지론은 위험한 발상이다. 시간이 갈수록 협상의 구심력이 줄어들어 모두 패자가 되기 쉽다. 미국과 한국에서 다른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기본 조건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핵 문제 해결에 온힘을 기울일 때가 바로 지금이다.
북-중 정상회담 추진설이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하나의 고비는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다. 한국은 미국에 왜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피하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직접 나서기 싫으면 한국이나 중국에 일정 부분 위임하는 등 다른 현실적 방법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이어 중국에만 맡겨두지 말고 남북 사이 직접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결론은 6자 회담에서 내리더라도 회담의 동력을 회복하고 기본틀을 짜야 하는 건 우리다.
심판을 폭행한 북한 여자축구 선수 세 사람은 이후 3·4위 결정전에 나갈 수 없었다. 북한의 앞날은 더 심각할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자국보다 북한의 이익을 더 챙길 나라는 없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이 내놓는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다른 출구가 없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심판을 폭행한 북한 여자축구 선수 세 사람은 이후 3·4위 결정전에 나갈 수 없었다. 북한의 앞날은 더 심각할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자국보다 북한의 이익을 더 챙길 나라는 없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이 내놓는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다른 출구가 없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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