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칼럼
북한의 지난 5일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궁금한 점은 ‘북한의 전략적 판단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가 무력시위를 통해 금융제재 완화 등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데 있다면 말 그대로 벼랑끝 ‘전술’이 된다. 이 경우에는, 6자 회담이 오랫동안 열리지 못하는 교착국면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일 뿐 협상 틀을 깨려는 목적은 없다고 봐야 한다. 다음날 북한 외무성 대변인도 ‘자위적 군사훈련’이었을 뿐 6자 회담과는 무관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이 6자 회담 무력화라는 전략적 판단을 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유일한 길로 설정하고 본격적 도박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0년 수교 직전까지 갔던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전례를 조지 부시 행정부에도 요구하는 셈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난 몇 해 동안 6자 회담을 대외정책의 성공사례로 꼽아왔기 때문만도 아니고, ‘클린턴 방식’에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들은 북한 체제 및 핵심 정권 담당자들을 정말 ‘악’으로 본다. 이는 부시 행정부 대외정책의 기본 전제이자 종교적 차원의 신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부시 행정부는 근본주의적이다. 북한이 새로운 전략적 판단을 했다면 적어도 미국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2009년까지 핵·미사일 등 북한 관련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전술과 전략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의도에도 양쪽이 섞였음 직하다. 미국이 한두 걸음 물러서면 전술의 성공이 되고, 양자협상에 호응해 새판이 짜여지면 전략적 승리가 된다. 북한은 양쪽 다 불확실하고 자신이 고립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미사일을 쐈다.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낮은 가능성에 나라의 앞날을 거는 모험주의다. 쏘지 않았으면 미국의 양보를 얻는 데 기여할 수도 있었던 미사일 카드는 이제 사라졌다. 미국은 ‘북한 미사일은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할 테면 해보라는 태도다.
모험주의와 근본주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보다는 자신의 믿음과 작은 가능성에 매달린다. 그래서 양쪽이 부닥치면 반드시 파국이 온다. 지금은 그 초입에 들어선 형국이다. 이대로 가면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국이 북한 근해를 무력 봉쇄하는 시나리오가 그리 멀지 않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지금이 기회다. 최악의 상황을 내다볼 수 있을 때 타협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 모두 6자 회담이라는 기본틀을 부정하지 않고 있지만 올해가 넘어가면 이 회담은 유명무실해진다. 시간이 몇 달밖에 없다.
가장 많은 짐을 져야 할 나라는 한국과 미국이다. 남북관계 진전은 북한이 모험주의를 포기하고 현실적 판단을 하도록 돕는 데 기여할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북한과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상설 고위급 통로 구축이다. 대북특사도 보내고 필요하면 정상회담도 추진해야 한다. 핵·미사일 등 북한 관련 문제는 미국 공화당 정권 때 해결해야 뒤탈이 없다.
부시 행정부는 먼저 북한 붕괴론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민주적 체제라고 해서 생존력이 낮은 건 아니다. 북한이 평화적으로 바뀌어나갈 가능성을 인정하고, 인권·불법행위 문제 등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성과가 예상되는데도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피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부시 행정부는 두 임기를 허송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준엄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부시 행정부는 먼저 북한 붕괴론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민주적 체제라고 해서 생존력이 낮은 건 아니다. 북한이 평화적으로 바뀌어나갈 가능성을 인정하고, 인권·불법행위 문제 등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성과가 예상되는데도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피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부시 행정부는 두 임기를 허송하며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준엄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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