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칼럼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는 ‘팩트’탱크를 자임하는 민간기관이다. 싱크탱크와는 달리 팩트(사실)로 말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관이 지난주 내놓은 15개국 여론조사 결과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미국의 대외 이미지가 더 나빠졌다’는 부분이 각국 언론에 집중 보도됐지만, 북한처럼 핵·미사일 계획을 추진해 온 이란에 대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이란이 지역과 세계에 얼마나 위험한가’라는 질문에 미국·유럽·일본 등 서방국에선 ‘매우 위험’과 ‘상당히 위험’을 합쳐 70~80%나 된다. 반면 중동국에선 ‘조금 위험 또는 무위험’이 60~80%로 정반대다.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두고서도 서방 응답자는 90% 이상이 반대하는 데 비해, 중동국 가운데는 터키만 반대(61%)가 많을 뿐 이집트와 요르단은 찬반(40%대)이 비슷하고, 파키스탄은 찬성(52%)이 반대(15%)보다 세 배 이상 많다. 또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경우, 서방 응답자의 3분의 2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무기로 제공될 것’이라고 했으나 중동·이슬람국에선 60% 이상이 ‘방어용으로만 사용할 것’으로 본다. 곧, 중동인 다수는 이란이 미국·이스라엘을 견제하기 위해 핵무기를 갖는 것을 지지한다.
만약 북한과 북한핵을 놓고 동북아 지역에서 조사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북한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에선 나라별로 차이가 크겠지만, 핵무기 보유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반대가 압도적일 것이다. 북한과 이란의 가장 큰 차이 가운데 하나다. 이는 주변국과 미국의 전략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북한과 이란의 결정적 차이는 더 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에 이은 세계 4위 산유국이다. 하루 250만배럴의 석유를 수출하며, 그 중 60%는 한국·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나라로 간다. 미국은 이란의 석유 수출을 통제할 수가 없고, 이란도 미국의 경제 봉쇄를 그다지 겁낼 이유가 없다.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에 시달리는데다 외화획득 수단도 변변찮은 북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이란도 3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3주 만에 수도 바그다드를 함락시키자 핵계획 등 모든 걸 논의할 수 있다며 미국에 먼저 대화를 제의했다고 한다. 당시 이란 정부의 붕괴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무시했던 미국은, 이란이 핵계획과 미사일 기술을 훨씬 진전시킨 지금에야 이란과 직접 협상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현실을 직시하는 데 무려 3년이 걸린 셈이다. 그 사이에 이라크에선 2500명 이상의 미군이 숨졌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준비라는 카드를 꺼냈다. 대북 협상보다는 압박에 치중하는 미국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이란과 비슷하다. 하지만 미사일을 쏘는 순간부터 판이하게 달라진다. 협상 무대인 6자 회담은 사실상 폐기되고, 북-미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가능성이 다분하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는 2009년 초까지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미사일을 쏘고 나서 북한이 쓸 수 있는 카드도 별로 없다. 북한은 1990년대와 비슷한 ‘고난의 행군’을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르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약간의 국내정치적 부담 외에는 손해볼 게 없다.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속도를 높일 수 있고, 미-일 군사 일체화를 비롯해 아태 지역 군사력 재편에도 유리하다.
북한의 미사일은 쏘기 전까지는 약발이 있을지 몰라도 쏘는 순간부터 역효과를 내는 카드다. 북한은 이란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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