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 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
반딧불이
생태의 눈으로 돌아본 한국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한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1위다. 지난 반세기의 근대적 산업화는 그러한 경제규모를 일구는 고달픈 삶의 역정이었고, 우리의 국토환경은 이를 온전히 담고 있다. 1980년 대비 2003년 국토단위당 경제밀도는 4.6배, 국토단위당 에너지 밀도는 4.9배 증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당 에너지 사용량, 즉 에너지 효율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낮다. 낮은 에너지 효율성은 상대적으로 많은 폐기물 배출의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 인구는 일본의 1/3, 국토면적은 1/4, 국민총생산은 1/12 수준이지만, 아황산가스 배출량 발생밀도는 8배,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은 20배에 이른다. 이렇다 보니 세계경제포럼이 2005년에 발표한 세계 각국의 환경지속성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146개국 중 122위를 차지했지만 국토환경에 걸리는 환경오염의 부하량 지수에서는 146개국 중 세계 최고다.
이 모든 것은 한국 사회가 국토환경 용량을 훨씬 넘어서는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해서 발전이 거듭될수록 사회경제 시스템과 자연환경 시스템 사이의 균형 혹은 지속가능성은 일그러져, 생태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위험사회’의 벼랑으로 내몰리게 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번도 끈을 늦추지 않고 몰아붙인 개발 드라이브의 결과다.
해방 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박동시키는 심장은 이른바 ‘개발의 정치’다. 한국에서 개발정치는 개발주의가 국가건설의 이념이 되면서 시작돼, 한국 사회의 주류이념으로 뿌리내리면서 일상문화로 보편화되었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합수하면서 개발주의는 신개발주의로 바뀌어 우리 사회 전반에 출렁이고 있다. 참여정부의 개혁적 실험들도 하나같이 신개발주의 정치로 변색된 채 우리 사회에 최소한 남아있는 ‘진보의 샘물’마저 고갈시키고 있다. 민주화가 되었지만 개발의 문제는 진보개혁 세력의 미래를 개척하는 데 중대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정치를 넘어서기 위한 가능성은 ‘녹색의 권력화’에서 찾아야 한다. 발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권력의 문제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지배와 종속의 권력관계가 발전의 양식이라면, 이의 다스림은 곧 국가의 존재이유다. 국가는 사람과 사람의 권력관계를 규율하는 것의 연장으로 사람에 맞서는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이 점에서 국가는 태생적으로 반생태적이다. 국가권력을 어떻게 녹색의 권력으로 바꾸어낼 건가는 ‘발전의 녹색화’, ‘통치의 녹색화’, 나아가 ‘생태사회’로 나가는 데 핵심이다.
녹색의 권력화를 거쳐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발전의 상태는 ‘녹색진보’다. 녹색진보는 생태적 순환·호혜·평등·진화의 원리에 부응하는 변혁을 추구하는 신진보로서, 사람 중심의 구진보와 구분된다. 녹색진보를 위해선, 해방 후 지금까지 추구해 온 한국의 산업적 근대화를 생태적 탈근대화로 ‘발전의 문법’을 바꾸어야 한다. ‘정부의 녹색화’를 필두로, 신자유주의 시대 기업에 사회적·환경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을 통해 ‘시장의 녹색화’를 실현하고, 자연을 상품으로 소비하는 웰빙족을 생태적 주체로 바꾸어내는 것을 통해 ‘시민사회의 녹색화’를 도모해야 한다.
조명래/단국대 교수·도시계획 좋은정책포럼 운영위원
*조명래 교수는 최근 저서 <개발정치와 녹색진보>를 통해 생태주의와 진보정치의 접합가능성을 탐색하고, ‘개발의 정치’를 ‘녹색정치’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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