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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칼럼] 열린우리당이 살 길

등록 2006-05-31 19:31수정 2006-06-12 11:20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칼럼
‘심판을 선택으로!’

대외 문제도 국내 현안도 잘 풀리지 않는다. ‘무능한 정부, 지리멸렬한 당’으로 찍혀 있다. 대통령의 업무 지지도는 30%대 초반을 맴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든든했던 지지자들은 많은 수가 이탈했다. 남은 지지세력도 분열돼 있다.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대통령 얘기인가? 그대로 들어맞는다. 미국 공화당과 조지 부시 대통령도 바로 그렇다. 반년이 채 남지 않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고심 중이다. 방법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이 ‘심판’받는 분위기를, 유권자들이 공화당과 민주당의 후보와 정책을 놓고 ‘선택’하는 쪽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그러면 시소게임은 된다.

심판의 대상이 된 정치세력은 선거에서 반드시 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그 꼴이다. 이럴 때는 아무리 정책선거, 공약선거를 외쳐봐야 약발이 듣지 않는다. 미국 공화당처럼 최소한 몇 달 전부터 심판을 선택으로 바꾸려는 진지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패배는 당연하다.

2년 전 총선에선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한나라당이 심판당했다. 지금은 무엇에 대한 심판인지 한두 가지로 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많은 유권자들은 ‘정책 실패와 무능’이라고 대답한다. 패배자로선 이런 경우가 더 어렵다.

보수세력의 최대 정치 자산은 ‘불안’이다. 국민의 불안이 커질수록 보수파의 집권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부시 행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과거 냉전 수준의 전지구적 장기전으로 격상시킨 배경에도, 불안을 구조화해 공화당의 장기집권 기반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반면 진보개혁 세력에는 국민의 ‘불만’이 좋은 정치 자산이 된다. 얼마 전 프랑스의 새 최초고용법을 철회시킨 것은 죄어오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학생과 노동자의 위기의식이었다. 사회당은 별로 한 게 없었으나 덩달아 지지율이 올라갔다. 현명한 정치세력이라면 불안은 ‘힘’으로, 불만은 ‘꿈’으로 수렴해 국민 앞에 내놓는다.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은 양쪽에서 졌다. 첫째, 국민의 불안이 커졌다. 그럼으로써 지난 대선 때 노 대통령을 찍은 중도파들이 상당수 보수 쪽으로 이동했다. 특히 대도시의 40대 이상 연령층에서 두드러진다. 둘째, 중산층과 서민의 불만을 승화시킬 수 있는 꿈을 제시하지 못했다. 나아가 왜곡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대연정 파동과 최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 강행이 그것이다.

지금 지구촌 주요 나라들의 정치는 교착기가 장기화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다 보니 큰 쟁점 없이 박빙의 접전이 이어진다. 최근 이탈리아 총선과 지난해 프랑스·독일 총선이 그랬고, 두 차례 미국 대선도 비슷했다. 보수파들은 이미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그대로 밀고가려 하고, 진보개혁 세력은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런 ‘고뇌의 시기’에는 많은 세력을 묶어세우는 쪽에 미래가 있다. 곧 연대가 해답이다.


열린우리당이 살아남으려면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맞서는 중도개혁 정당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해야 한다. 민주세력 연합론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발상이다. 민주당과 손잡고 싶으면 서로 실체를 인정하면서 손잡으면 된다. 독자적 기반을 가진 전국 정당인 민주노동당과도 마찬가지다. 녹색당도 이제 생길 때가 됐다. 열-민-노-녹 연대는 한국형 개혁-진보 연대로서 훌륭한 틀이다. 열쇠는 열린우리당이 ‘노무현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생력 있는 정책정당이 될 수 있느냐에 있다. 열린우리당의 역사적 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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