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성장 방식을 바꿔야 민생이 산다 [세상읽기]

등록 2024-01-08 16:12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경기도 용인 중소기업인력개발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참석해 토론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아직 2년도 지나지 않았다.

2022년 대통령 선거는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이를 저지하려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를 불공정한 기득권 세력이라고 비난하면서, 윤석열 후보가 공정한 세상을 염원하는 국민 모두의 대변자인 것처럼 선전했다. 국민의힘의 간판 대선 구호가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인 이유였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다. 국민은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던 것일까? 너무 상식적인 질문이라 답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대다수 국민은 출범한 지 석달도 채 안돼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역대 정부와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일 정도로 이른 시기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집권한 윤석열 정부였기에, 다수의 국민은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윤석열 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덟번의 대통령 선거와 아홉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는데 거의 매번 그랬다. 국민이 선거 전에 가졌던 일말의 기대는 매번 엄청난 실망으로 끝났다.

왜 그랬을까? 민주화 이후 집권 세력이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무능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한다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중간소득 함정에서 벗어나 고소득국가가 되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 힘들어졌다.

복지를 확대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여전히 부족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지출이 1990년 2.6%에서 2022년 14.8%로 지난 30년 남짓 동안 약 5배나 증가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했을 때 유례없이 빠른 증가 속도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떤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적 복지를 큰 폭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큰 폭의 복지 확대도 점점 더 심각해지는 민생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심각해지는 민생의 어려움을 그대로 둘 수도 없었을 것이다. 복지라도 늘리지 않았다면, 한국 사회의 위기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폭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양한 주장이 가능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성장 방식이 만드는 민생 위기는 그 방식을 바꾸지 않고서는 완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1990년대 이전 한국 사회는 성장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를 통해 민생 문제를 완화했다. 하지만 199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에서 성장이 일자리를 만들고 민생 문제를 완화하는 ‘낙수 효과’가 사라졌다.

1990년대 이후 국가가 지원하고 재벌 대기업이 추진했던 ‘신경영전략’이라고 알려진 성장 방식은 대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우리나라를 선진국 지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 성장 방식은 숙련 노동을 첨단 자동화 설비로 대체하는 생산 방식으로 시장에서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기업 규모에 따른 생산성과 임금 격차를 극단적으로 벌어지게 했다.

그러자 성장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과 멀어져갔다. 심지어 한국 사회는 한번 중소 사업체에 들어가면 평생을 그곳에서 일해야 하고, 한번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면 평생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이러한 성장 방식이 시장에서 계속 나쁜 일자리를 만들면서 민생을 악화시켰던 것이다.

민주화 이후 정권이 네차례나 바뀌고, 새롭게 집권한 정부마다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지만, 민생은 점점 더 악화하였던 이유다. 문제의 근원이 성장 방식에 있는데, 이를 바꾸지 않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백약이 무효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은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 방식을 바꾸지 않고 정권만 심판해서는 민생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지난 30년 동안 고통스럽게 경험했다. 이제 국민의 이름으로 책임 있는 여야 정당에 성장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해야 한다. 재벌 대기업만 좋은 성장 방식이 아닌 대기업,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성장 방식을 찾아 공약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더는 미룰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성장 방식을 바꿔야 민생이 산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가 쓰는 예산’만 민생이라는 여야…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12월3일 뉴스뷰리핑] 1.

‘내가 쓰는 예산’만 민생이라는 여야…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12월3일 뉴스뷰리핑]

시작도 못 한 혁명 [똑똑! 한국사회] 2.

시작도 못 한 혁명 [똑똑! 한국사회]

비루한 한동훈의 소심한 줄타기 [뉴스룸에서] 3.

비루한 한동훈의 소심한 줄타기 [뉴스룸에서]

[사설] 특활비·예비비 공개·축소하고, 여야 예산안 합의하라 4.

[사설] 특활비·예비비 공개·축소하고, 여야 예산안 합의하라

정우성 논란 계기로 ‘아버지의 역할’ 새롭게 논의해야 [왜냐면] 5.

정우성 논란 계기로 ‘아버지의 역할’ 새롭게 논의해야 [왜냐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