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라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기획차장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다지만, 정답을 향한 방향은 있지 않을까. 7년 전 나를 공익활동가로 이끈 생각이다.
학창 시절 나는 모범생이었다. 정해진 규칙에 벗어나지 않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 열심히 공부하며 살았다. 대학 시절에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이들처럼 좋은 직장을 가져야지’ 하며 노력하는 시간을 보냈다.
대학 3학년이던 2013년,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온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운동이 일어났다. 나를 넘어 타인, 사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이때 뭔지 모를 감정에 이끌려 난생처음 이에 동참하는 대자보를 썼다. 대자보는 이틀 만에 철거됐지만, 나는 평범했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후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쪼개 몇몇 공익단체를 후원하며 공익활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공익활동가가 되고자 했던 건 사회생활을 하면서였다. 사회에 발을 내디뎌 보니 사회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 가려진 많은 문제를 체감하게 됐고, 과연 올바른 답이 놓인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시작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였다. 이곳은 내가 직장에서 겪던 비정규직 차별, 직장 내 괴롭힘을 이겨낼 힘을 얻고자 후원을 늘린 한 곳이었는데,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도움이 되고 싶었다. 후원을 이어간 지 1년쯤 지나, 후원회원이 아닌 활동가가 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때마침 공개채용이 있었다. 운명이라는 생각에 지원해, 마침내 공익활동가의 삶을 시작했다. 집요하고 긴 호흡의 운동은 새롭고 낯설었다. 하지만 철벽이 된 사회의 관성과 부조리에 자극을 주고 변화를 꾀하는 이 일이 좋았다.
그렇다고 공익활동가의 삶이 늘 보람찬 건 아니었다. 지난 7년 동안 여성인권을 비롯한 복지, 노동단체 활동을 이어오며 마주한 이들은 평범한 삶을 꿈꿀 수 없었고, 억울함과 분노, 체념이 일상이었다. 그들과 함께한 나 역시 그런 상실감에 익숙해지곤 했다. 지금 몸담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방송미디어 현장의 사각지대에 놓인 종사자들을 마주하는데, 말도 안 되는 위계와 부조리에 지친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떻게 대응 활동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열심히 해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세상의 벽을 절감할 때면 허탈함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공익활동가의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살아감에 있어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는 ‘참는 게 미덕이고, 이기는 것’이라고 말하며 불합리와 부조리를 강요한다. 이뿐인가. 다양해진 삶의 방식을 포용하지 못한 채 소수자들을 움츠리게 한다. 안 그래도 녹록지 않은 불평등한 세상살이에 참고 견딘다는 것은 고통이고 폭력이기에, 이를 깨려는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정답은 안되더라도 방향은 잡고 살자,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변화의 조약돌을 쌓고 쌓아 탑을 이루면, 세상의 변화를 끌어내지 않을까. 설령 당장의 변화를 이끌지 못해도 나와 비슷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불씨를 심어준다면 그거로 됐다. 결국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니까.
‘각자도생의 시대 나는 왜 공익활동의 길을 선택했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투고(opinion@hani.co.kr)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