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엘에이 다저스에 입단한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가 등번호 17번을 받고 통 큰 보답을 해 눈길을 끈다. 오타니는 번호를 양보한 동료 조 켈리의 부인에게 고급 차를 선물했다. 번호에 값이 있다면, 최소한 차값 이상이다.
운동선수들의 등번호는 분신과 같다. 축구의 펠레나 디에고 마라도나를 떠올리면 10번이 연상되고,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23번은 르브론 제임스 등 스타들에 의해 계속 살아남는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손흥민이 애착을 보이는 7번은 축구 선수들이 선호하는 번호다. 박찬호의 61번, 허재의 9번도 팬들의 기억에 뚜렷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선수의 등번호는 1900년대 축구에서 등장했고, 야구 등 다른 단체종목으로 확대됐다. 통상 1~99번을 사용하는데 선수만의 사연을 담기도 한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이시우는 작고한 아버지의 생년을 기념해 56번을 달고 뛰고 있고, 류현진의 99번에는 친정팀인 한화의 영광 재현이나 무한 성장의 뜻이 담겨 있다.
등번호의 ‘희생’을 통해 의미를 ‘신성화’하는 사례도 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42번은 전 구단에서 사용할 수 없는데, 그의 데뷔일인 4월15일엔 모든 선수가 42번을 달고 뛴다.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 빌 러셀의 6번은 2022년 그의 타계 뒤 전 구단 영구결번이 되면서 민권운동 참여의 뜻은 길이 남게 됐다. 한국에서는 삼성 농구단의 김현준 10번 등 구단별 영구결번이 존재한다.
등번호는 상업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름의 영문 대문자와 등번호를 합친 ‘CR7’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만들었다. 조던의 등번호 23번은 나이키라는 상표와 결합하면서 세계 농구화 시장을 점령했다. 서장훈은 에스케이에서 뛰면서 구단의 이동통신 011을 연상시키는 11번을 달았다. 팬들은 이들과 공감하기 위해 유니폼이나 신발을 산다.
변수가 많은 스포츠에서는 각종 사물들이 상징과 물신, 징크스와 연결돼 있다. 연승을 위해 속옷을 갈아입지 않거나 머리를 깎지 않는 경우도 있고, 잘나갈 때의 등번호는 바꾸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최고 몸값의 오타니가 17번으로 안정감을 얻었다면, 고급 차 답례는 남는 장사일 수도 있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