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곤충 종의 세포 안에서 사는 공생 박테리아 ‘볼바키아’(W 표시)의 투과전자현미경 영상. 병원성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를 볼바키아 박테리아에 감염시키면, 바이러스 증식이 억제돼 결과적으로 모기의 바이러스 전파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계모기프로그램(WMP)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박테리아로 바이러스를 물리친다. 며칠 전 ‘네이처’가 새해에 주목할 만한 과학계 뉴스를 전망하는 기사에서 관심사의 하나로 브라질에 건설될 ‘볼바키아 모기’ 생산공장 사업을 꼽았다. 네이처는 모기 생산공장이 “향후 10년 동안 해마다 최대 볼바키아 모기 50억마리를 길러낼 것”이라고 전했다. 볼바키아 모기가 뭐길래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을까?
볼바키아(Wolbachia, 영어 발음 ‘올바키아’)는 곤충 세포 안에 사는 공생 박테리아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 박테리아가 세포 안에서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근 10여년 새 감염병 퇴치 사업의 동맹군으로 떠올랐다.(
한겨레, 2020년 1월22일치) 뎅기열, 지카, 치쿤구니아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를 볼바키아에 감염시켜 방출하면, 야생에서 모기들이 교배를 통해 자연스럽게 볼바키아 모기로 바뀌어 바이러스 감염병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감염병에 시달리는 브라질에서 야생의 바이러스 매개 이집트숲모기를 점차 볼바키아 모기로 대체하려는 게 이 사업의 목표이다.
이렇게 대형 프로젝트가 시행되기까지는 비영리기구인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의 역할이 컸다. 볼바키아의 바이러스 억제 능력을 2008년 처음 발견한 스콧 오닐 오스트레일리아 모내시대학 교수가 세운 이 기구는 그동안 오스트레일리아와 베트남, 콜롬비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볼바키아 모기를 방출하고 감염병 감소 효과를 확인하는 야외시험을 계속해왔다.
야외시험 결과는 큰 관심을 끌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시행된 시험에서 뎅기열 발병률이 77%나 줄어들었다는 결과가 2020년 보고됐다. 지난 10월에는 콜롬비아에서 볼바키아 모기를 방출한 2015년 이래 뎅기열 발병이 90% 넘게 감소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효과는 현지 여건에 따라 달라졌다. 지난해 발표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시험 결과에서는 감소율이 38%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브라질 볼바키아 모기 생산공장은 지난 10여년 시험을 거쳐 처음 이뤄지는 본격적인 뎅기열 퇴치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볼바키아 모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방법이 바이러스 감염병을 퇴치하는 안전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세계모기프로그램은 살충제 대량 살포나 방사선과 유전자 변형을 이용한 불임 모기 방출 같은 방법에 비해, 볼바키아 모기가 인간과 자연 생태계 모두에 안전하고 자연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볼바키아 모기가 모기 종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서 자연 교배를 통해 바이러스 매개 모기 개체군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볼바키아 모기가 완성된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야외시험에서 뎅기열 바이러스에 상당한 효과를 나타냈지만, 지카나 치쿤구니아 같은 다른 바이러스에는 그렇지 못하다. 새로운 볼바키아 변종을 찾는 연구는 계속된다. 세계모기프로그램과 다른 방식으로, 볼바키아 모기로 불임 효과를 일으켜 모기 개체군을 줄이는 기술도 한창 연구개발되고 있다. 볼바키아라는 미생물 동맹군을 끌어들여, 모기로 모기를 물리치는 공중보건 기술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