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수학능력시험 ‘킬러문항 배제’ 논쟁은 현행 입시제도를 둘러싼 각종 문제점이 다시 한번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 공교육의 한 단면이 드러나면서, 교육주체들의 여러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들의 바탕에는 승자독식 사회의 그림자를 그대로 담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 현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실해져 가는 공교육의 이면에는 갈수록 고도화, 효율화돼 번성하는 사교육이 존재합니다.한겨레는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작가 10명과 손잡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소재로 한 미니픽션 10회 연재 ‘슬픈 경쟁, 아픈 교실’을 시작합니다. 격주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이번 기획에는 장강명 정진영 주원규 한은형 최영 정아은 지영 염기원 서윤빈 서유미 작가가 함께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윤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미래에 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공부에 아무런 현실감도 느끼지 못했다. 내가 미적분을 할 줄 알든 말든 닭은 잘 자랐고, 가계부는 간단한 덧셈 뺄셈이면 충분했다. 지원금 일로 주민센터 직원들과 대거리를 하다 보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치와 법이라는 걸 도무지 믿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은 글자가 아니라 뼈와 살로 움직이는 곳이다. 입학식 날부터 선생이 복도에 붙여놓은 대학-학과별 수능점수 커트라인이 내게는 여름밤의 시시껄렁한 괴담과 다를 바 없었다. 선생은 첫 학기에 전교 3등 안에 든 애들로 특별반을 만들어 대입을 위한 총력적인 지원을 한다고 했다. 거기에 못 들면 대입은 망한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우리 학년의 학생 수는 100명이었다. 97%가 대학에 갈 수 없다면 대학에 가는 3%가 비정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사는 마을은 언덕을 경계로 읍내와 변두리가 갈렸다. 읍내에는 피시(PC)방과 오락실, 편의점, 노래방 따위의 여느 읍내에나 있을 만한 것들이 있었다. 굳이 차이를 꼽자면 우리가 그런 유흥거리들을 통칭해 인생이라고 불렀다는 것과 모든 가게의 간판이 당장 지워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았다는 것 정도. 어리둥절한 표정의 부엉이가 그려진 독서실 하나만이 한때는 번성할 뻔했다던 읍의 과거를 증언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곳이 그 시절 우리의 절반이었다. 시골이라고 자연을 뛰노는 순수한 소년·소녀는 없다. 우리에게 자연이란 몰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울 대피처에 불과했다.
우리 97%의 정상들은 읍내를 뻔질나게 오가며 서로 안면을 트고 친해졌다. 윤이는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읍내로 오면서도 인생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유일한 애였다. 가끔 편의점에서 윤이를 봤다는 목격담만 유령처럼 떠돌아다닐 뿐, 아무도 윤이가 뭐하러 읍내에 오는지 알지 못했다.
윤이는 특별히 활달한 애가 아니었는데도 학기 초부터 기이한 존재감을 발했다. 예쁘장한 외모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선배들의 방문이 잦았던 탓이다. 인생에서 보이지 않으면서도 선배들과 알고 지낼 확률은 잘은 몰라도 3%보다는 낮을 것이다. 우리 97%는 늘 그 기이한 현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윤이는 언제나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문제집을 풀었다. 그 태도에서 나오는 서늘한 기운 탓에 우리는 아무것도 물어볼 엄두를 못 냈다. 몇몇은 선배들과 담배를 피우며 살짝 운을 띄워보기도 했지만, 선배들 역시 어물쩍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마치 윤이의 이름이 어떤 금기라도 되는 것처럼.
3월이 끝날 무렵이 되자 선배들은 더는 반에 찾아와 윤이를 부르지 않았다. 윤이를 향한 우리의 관심도 그와 같이 사그라들었다. 윤이는 남자 고등학생의 사춘기를 자극할 정도로 예뻤지만,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마을에는 다른 심심한 여자애들이 충분히 많았다.
나는 애들의 관심이 사라지고도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윤이와 대화를 텄다. 학교에서 읍내에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여기 마을버스는 비가 오면 제멋대로 운행을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비가 오면 우리는 알음알음 오토바이를 빌려 타거나 버려진 비닐하우스를 아지트 삼아 놀았다. 4월1일,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고 나는 상담이 잡히는 바람에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다. 웅얼웅얼 불평을 씹으며 돌아온 교실에 윤이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홀로 앉아 있었다. 윤이는 마치 흠뻑 젖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이어폰도 거짓말처럼 책상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윤이가 책상이나 칠판이 아니라 허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문득 말을 걸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보는 윤이의 화창한 표정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대답만큼은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 배고파.
정신을 차려보니 윤이는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있었고, 나는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닭의 멱을 따 펄펄 끓는 물에 넣고 있었다. 아이고 난 죽었다,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날 이후로 윤이는 종종 배가 고프다며 나를 찾았다. 학교에서 따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잊을만하면 음식 이름만 적힌 문자가 도착해 있곤 했다. 나는 요리를 하거나 사 왔고, 윤이는 먹었다. 윤이의 지갑에는 편의점에서도 사용 가능한 교통카드 딱 하나만 들어 있었다. 윤이는 나와 밥을 먹을 때마다 마치 오래 참은 숨을 내쉬듯 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일견 균형이 맞지 않는 우리 관계는 그 표정 덕분에 이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밥만 먹지는 않았다. 윤이는 그냥 얻어먹기는 미안하다면서 내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우겼고, 나는 처음으로 공부의 부드러운 실체를 느꼈다. 윤이는 내가 왜 공부를 하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물었다.
― 대학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긴 하는 거야?
윤이가 대답했다.
― 아니면 왜 다들 목숨을 걸고 공부하겠어?
우리 97%는 인생에서 유흥과 연애에 목숨을 건다는 걸 나는 말하지 않았다. 윤이는 중간고사에서 전교 3등을 했으니까. 하지만 심드렁한 표정까지 감추는 데는 실패했는지 윤이는 대학의 중요성에 관한 긴 설교를 늘어놓았다. 대학이란 새로운 인생과도 같아서 좋은 대학에 가면 평생 노는 물이 바뀐다는 식이었다.
― 대학이 인생을 지배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거야.
윤이의 표정이 마치 유령처럼 서늘하게 일렁였다. 윤이가 유독 따뜻한 음식만 찾았던 이유가 그것이었을까.
윤이는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윤이는 우리가 노는 동안 곰팡내 나는 독서실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윤이는 빠네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윤이네 집은 윤이를 위해 서울에서 이사 온 거라서 동네에 친구가 없다고 했다.
윤이는 돼지국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윤이는 학교를 1년 쉬었다. 그래서 선배들을 모를 수가 없다고 했다.
윤이는 닭백숙이 먹고 싶다고 했다. 윤이는 시험 한달 전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그동안엔 아무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윤이는 술이 먹고 싶다고 했다. 윤이의 주사는 아무 말도 없이 눈물에 익사할 기세로 우는 거였다.
술이 문제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윤이는 사라졌다. 학교에 나오지도 않았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나는 괜히 좋은 술을 먹이겠다고 양주를 깐 걸 후회했다. 술인 척 적당한 주스를 줬어도 윤이는 몰랐을 텐데. 나는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윤이의 흔적을 매일 확인했다. 윤이의 흔적은 교실 뒤편의 빈 책걸상과 석차 등수 표에만 남아 있었다. 윤이의 1학기 최종 성적은 전교 4등이었다.
반년은 길고도 짧은 시간이다. 지루한 어리둥절함 속에서 나는 2학년이 되었다. 나조차도 더는 윤이의 행방을 궁금해하지 않게 되었을 그 무렵, 친구가 윤이가 학교에 나타났다고 했다. 나는 친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윤이는 친구에게 나를 불러 달라고 했을 것이다. 윤이는 술을 마시고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고, 독한 술병에 걸려 여태 입원했었다고, 살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해줄 것이다. 나는 윤이의 쾌유를 축하하며 닭을 한마리 잡아줄 것이다. 그러나 친구는 1층까지 내려가지 않고 2층에서 멈췄다. 그는 나를 1학년 교실로 이끌었다. 1학년 2반이었다. 얼핏 열린 미닫이문 너머로 책상에 앉아 있는 윤이의 모습이 보였다. 윤이의 가슴팍에는 1학년들이 달고 있는 것과 같은 색의 명찰이 붙어 있었다.
서윤빈 | ‘루나’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 ‘날개 절제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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