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성 히어로’(unsung hero)는 숨은 영웅을 뜻한다.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박지성은 국내외 미디어로부터 대표적인 언성 히어로로 평가받았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일을 하는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을 칭송하는 용어였다.
올해 프로축구 K리그 시상식장에서 언성 히어로가 등장했다. 이번엔 선수가 아니라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최우수선수로 뽑힌 울산 현대의 김영권은 수상 소감에서 “맛있는 식사를 해주는 식당 어머니, 아버지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득점왕에 오른 울산 현대의 주민규도 수상 기쁨을 나누면서, 클럽에서 선수들을 위해 밥 짓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가족이나 스폰서 등에 대한 발언이 주를 이루던 스포츠 무대 연말 시상식에서 ‘밥심’을 등장시킨 것은 파격적이다. 하지만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격렬한 신체활동을 감내해야 하는 운동선수들한테 에너지원인 음식만큼 소중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 스포츠 역사를 보더라도 밥심은 중요했다. 1950년 보스턴마라톤에서 함기용 등 한국 선수들이 1~3위를 휩쓸자, 당시 동아일보 사설에서 ‘김치 먹는 민족의 힘’이라는 예찬이 나왔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 한식을 공급하는 조리장이 선수단 일원으로 동행하는 경우도 많다. 남북 스포츠 교류가 활발할 때는 타국에서 만나 밥을 함께 먹거나, 싸서 간 반찬을 나눠 먹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이광수는 소설 ‘무명’에서 일제 형무소에서 사식으로 받은 쌀밥을 두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밥의 즐거움을 골고루 받게 하소서!”라고 빌었는데, 밥심에 대한 한국인의 각별한 정서를 볼 수 있다.
울산 현대 선수들이 밥과 밥심을 얘기하는 것은 홍명보 감독의 영향이 큰 것 같다. 홍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통틀어 스타의 길을 걸어왔고, 받은 것을 팬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가 16년간 주도해온 소아암 환자를 위한 연말 축구 이벤트는 가장 오래 이어진 스포츠인의 자선 행사였다. 울산 현대를 리그 2연패로 끌어올린 홍 감독의 지도력은 작은 것에서부터 선수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주변의 많은 사람이 언성 히어로 같다. 울산 현대 축구단 선수들이 불러준 뜻밖의 이름이 가져온 효과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