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테리아 ‘슈도모나스’의 생물막이 확장한 모습. 생물막이 확장하면서 내부 구조는 더욱 복잡해진다. 생물막 안의 박테리아들은 경쟁하고 협업하면서 생물막 공동체를 유지한다. 콴타매거진/Scott Chimileski, Roberto Kolter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대부분 박테리아는 기회가 되면 어디건 표면에 달라붙어 방어막을 치고 그 안에서 집단생활을 한다. 방어막은 박테리아 자신이 분비하는 당, 단백질, 지질 같은 고분자 물질을 쌓아 만든다. 외부 위협을 막는 공동체 내부 환경이 구축되는데, 이를 생물막(biofilm)이라 부른다. 구강 미생물의 군집체인 치태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장내 미생물에게, 강 바위에 붙어사는 미생물에게 생물막은 혹독한 환경을 견디게 하는 생존 공간이 된다. 생물막 덕분에 박테리아는 혹한의 빙하, 뜨거운 심해 온천수에서도 살아남는다.
생물막은 그저 덩어리로 뭉친 군집체가 아니다. 생물막 속 박테리아들은 경쟁하며 협력하고 신호와 유전자를 주고받으며 공동의 생존을 도모하는 협력네트워크를 이룬다는 게 그동안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생물막은 ‘미생물의 도시’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근 스위스 바젤대학교 연구진이 유전자 발현을 세밀하게 추적하는 방법으로 생물막 박테리아들의 행동 특성을 분석한 결과를 지난달 ‘네이처 미생물학’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생물막 안쪽과 가장자리의 박테리아들이 서로 다른 대사산물을 생산하며 협력하고, 또한 먹이 일부는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두기까지 한다고 밝혔다. 세대를 넘는 분업과 협업은 생물막 공동체의 생존 전략이다.
흥미롭게도 생물막은 두 갈래의 연구 분야에서 아주 다른 은유로 이야기된다. 병원성 박테리아를 주로 다루는 의료 생명과학 분야에서 생물막은 부수고 들어가 공략해야 하는 ‘요새’로 그려진다. 군사적 함락의 표적이다. 생물막은 치아뿐 아니라 임플란트, 카테터 같은 보형물 표면에 증식해 감염병이나 만성질환을 일으키고, 항생제의 작용을 저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생물막 구조의 허점을 찾는 연구, 생물막을 저해하거나 분해하는 효소를 개발하는 게 주요 연구 목표로 떠오른다.
다른 분야에서 생물막은 산업 공정에 활용되는 ‘생산적 컨소시엄’으로 이야기된다. 지난달 ‘네이처 리뷰 미생물학’에는 유익한 생물막의 활용 분야를 살펴보는 논문이 실렸는데, 독일 저자들은 생물막이 혹독한 바이오 반응 공정에서 안정적으로 기능하는 바이오 촉매가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덕분에 생물막 박테리아들은 더 효과적으로 오염물을 분해하고 폐수를 정화할 수 있다. 식물 뿌리에 공생하며 작물을 도와 수확량을 늘리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이 분야에서는 생물막을 인공으로 만들거나 생물막 기능을 더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연구, 새로운 생물막의 바이오 반응 공정을 만드는 연구가 주목받는다.
생물막은 공략해야 하는 병원균의 요새이자 바이오산업에서 안정적으로 가동되는 미생물 일꾼들의 생산 컨소시엄이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그 이전에 생물막은 지구 역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미생물 유기체의 생존 방식이다. 생물막은 생활환경을 스스로 만들고 바꾸는 미생물의 능력을 보여준다. 유해균을 물리치고 유익균을 활용하기 위해, 지구 생명 역사를 더 이해하기 위해 다뤄야 하는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생물막에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