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반도체 동맹? 습관성 ‘각설이 외유’다

등록 2023-12-12 14:26수정 2023-12-12 23:19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침햇발] 이재성|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올해 13번째 국외 순방인 네덜란드 방문 일정(정상회담, ASML, 이준 열사 박물관)을 보면 적어도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특별한 외교 현안이 없으며, 국내용으로 기획되었고, 재벌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반도체 동맹 강화’라는 명분은 실무진이 사후적으로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7나노 이하의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에이에스엠엘(ASML) 클린룸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이미 방문한 바 있다. 국내 기업과의 협조는 알아서 잘 이뤄지고 있고, 미국의 첨단반도체 대중 수출 금지 방침에 네덜란드 정부와 에이에스엠엘도 동참하고 있으므로 한국 정부가 나서서 새삼 강화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는 ‘반도체 동맹’이다. 에이에스엠엘이 자사 부품을 수리해서 재활용하는 재제조센터(2400억원 투자)도 이미 경기 화성에 짓고 있다. 대통령이 기업에 도움을 주려고 순방을 기획했다기보다는 순방을 하려고 반도체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건 자연스럽다.

부산 엑스포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의문이 생긴다. 지난해 7월 이전까지 개최지 부산시조차 담당 조직이 1개팀에 불과할 정도로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는데, 윤석열 정부가 왜 갑자기 국가적 역량을 쏟아 넣도록 앞장섰느냐는 것이다. 이것 역시 순방을 위한 기획이었다고 의심하기엔 규모가 너무 커서 감히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대체 왜, 사우디 리야드가 유력하다는 숱한 외신들의 보도를 무시하면서, 심지어 자신들까지 속여가면서 난리 블루스를 추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괴이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윤석열 정부지만, 재벌 회장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부산 어묵을 시식하는 사진은 단연 압권이었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부산 총선 민심이 흉흉해지자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사과를 하고 재벌 회장들까지 동원한 것이다. 사실상 국내 정치에 재벌을 이용한 것이다. 새로운 정경유착의 싹이 자라고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재용”을 연호하는 시민들에게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하는 몸짓을 취하는 모습은 윤 대통령과 재벌 회장들의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이 회장으로선 윤 대통령이 본인의 죄를 사면해줬고, 막대한 법인세도 깎아주는 은인이므로 부르면 꼼짝없이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재벌 회장들도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하게 검찰권을 틀어쥐고 있는 대통령이니 무서울 수밖에 없다. 윤 정부 들어 카카오 같은 신흥재벌은 털어도 10대 재벌 수사한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 재벌 회장들로선 협조하는 대신 안전이 보장되는 셈이다. 검사 시절 유흥주점에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대기업 회장에게 구두에 폭탄주를 따라 주었다(‘티브이조선’ 방송 내용이다!)는 윤 대통령이니 그 아들뻘인 지금 회장들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는가. 재벌을 습관적으로 동원하는 행태 자체가 윤 대통령이 강조해 마지 않는 자유시장경제를 침해하는 것임을 직언할 사람이 지금 윤 대통령 주변에는 없다.

영화 ‘서울의 봄’의 정치군인들을 보면서 윤석열 사단의 정치검사들을 떠올렸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새삼 생각나는 차이점이 하나 있다. 전두환 정권은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임시 대통령 최규하가 포기를 선언했던 올림픽 유치 카드를 되살려, 공식 신청한 지 불과 4개월만인 1981년 9월 목적을 이뤘다. 같은 처지인 제3세계의 동정표를 얻었고, 이미 올림픽 개최 경험이 있는 경쟁자 일본의 경제력이 더 강해질 것을 우려한 미국과 영국조차도 솔깃하게 만들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부는 부산 엑스포 유치 전에서 재벌과 한류에 기대어 졸부 행세를 했고, 이념적 편향 외교로 말미암아 중국의 영향력이 큰 남미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지지를 잃었다. 전두환 군사정부보다도 무능하고, 안이하다.

윤석열 정부가 툭하면 재벌과 한류에 손을 벌리는 ‘각설이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성취를 곶감 빼듯 따먹기 바쁜 사이, 잠재성장률과 출생률을 비롯한 모든 지표는 우리가 정점을 통과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관심이 없다. ‘한 달에 한번 외유’와 ‘대통령 놀이’로 흥청거리고 있을 뿐.

s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1.

대통령 거짓말에 놀라지 않는 나라가 됐다 [권태호 칼럼]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2.

윤 대통령이 내일 답해야 할 것들, 사안별 쟁점 뭔가? [11월6일 뉴스뷰리핑]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3.

[사설] “내가 먼저 특검 주장할 것”, 7일 기자회견이 그때다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4.

자영업자들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유레카]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건 국민이다 5.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건 국민이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