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왼쪽)과 이충상·김용원(오른쪽 앞줄 왼쪽부터) 상임위원이 지난달 8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성수│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인권에는 좌우가 없다’거나 ‘인권은 진보·보수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옳다. 인권을 헌법적 가치로 선언한 이상 이념적 잣대를 들이댈 문제는 아니다. 물론 어떤 정파가 집권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건
속도나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최근 인권위 사태를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정말 보수가 집권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란 말인가?
이상한 조짐이 감지된 것은 한 상임위원의 충격적인 발언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태원 참사는 “피해자들이 부주의해서 스스로 너무 많이 모였다가 참사가 난 것”이고, 군 인권 문제에 관해서는 “같은 계급, 같은 기수끼리 훈련을 받기 때문에 내무반에서 괴롭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행위자 보호법”이라고 했으며, 차마 옮기기 힘든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했다는 얘기까지 전해졌다. 인권위 조사관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해 인권위 조사를 받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또 다른 상임위원은 아예 인권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사건의 효율적인 처리를 위해 운영되는 소위원회는 “3명 이상의 출석과 3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법률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상임위원은 기각 2명, 인용 1명으로 위원들 의견이 갈린 사건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는 명백한 법률 위반이다.
3명이 찬성해야만 기각 결정이 가능하다고 법문에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고, 22년 동안의 관행도 그렇다. 더 나아가 6명 위원이 합세하여 ‘소위원회 표결 결과 3명 이상 인용이 아닌 경우, 기각 또는 각하해야 한다’는 의안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소위원회 의결을 어렵게 만든 것은, 11명으로 구성된 합의제 기구의 특성상 소위원회 3명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라는 취지다. 인권위 설립 취지를 생각해 보면, 쉽사리 기각하지 말고 인권의 관점에서 살필 부분이 있는지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뜻일 테다. 기각이나 각하를 용이하게 만드는 것은 퇴행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30일 문제의 상임위원은 인권위에 ‘인권침해 추정’이 횡행하고 있으며, ‘진정인 친화적 업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인권위는 기존 법률·관행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거나 국제사회에서 인정되지만 국내에서는 충분히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인권 문제에 관해 선도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기구다. 진정 내용이 다소 투박하거나 설익었더라도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 인권침해를 추정하고 진정인 친화적 업무를 하고 있어서 문제라는 것은, 인권위의 본질적 기능을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전에도 문제의 두 상임위원은 인권위의 조치에 항의하러 찾아온 유족들을 특수감금·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인권위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수사해 달라니, 인권위 22년 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다. 침해구제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원은 해당 국·과장 인사 조치를 요구하며 사건 처리를 거부했고, 넉달 동안 사건 처리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를 두고서도 소위원장은 “피해가 그렇게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밀린) 317건은 하루 만에 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권위에 오는 진정은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절박한 사연이 담겨 있는 사건들이다. 이렇게 태평하고 안이하게 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인권위 같은 국가인권기구는 ‘인권 옹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법기관처럼 제3자 입장에서 소극적으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 바로 국가인권기구다. 두 상임위원이 그리고 있는 인권위의 모습과는 정확히 반대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두 상임위원은 각각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지명한 위원들이다. 보수 성향이라는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인권위법을 준수하고 인권위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이념적 잣대를 들이댈 이유는 없다. 실제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정부·여당이 임명한 보수 성향 위원 중에도 모범적인 활동을 했던 위원들이 있었다. 대단한 신념과 용기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 거다. 그들은 그냥 헌법과 국제인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준수하고 법의 취지와 양심을 지켰을 뿐이다. 슬프게도, 지금 두 상임위원께 바라는 건 인권과 인권위의 거창한 비전을 제시해 달라는 게 아니다. 그저 법과 양심을 지켜달라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