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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은행 팔 비틀기 쇼’ 말고 비즈니스 모델 손봐라 [아침햇발]

등록 2023-12-03 16:58수정 2023-12-04 02:4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북카페에서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 , “은행의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북카페에서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고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 , “은행의 독과점 행태는 정부가 그냥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제공

이봉현 |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마치 은행의 종노릇하는 것 같다.” 한 소상공인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했다는 이 푸념은 집값이 오를 때 대출받아 집을 산 이들의 심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은행들이 지난해에 이어 사상 최대 이익 행진을 이어가자 금융당국은 엄포를 놓으며 상생 금융을 주문하고, 정치권은 ‘횡재세’를 거론하며 압박한다. 보여주기식 법석일 뿐이다.

집값 폭등은 다수 국민에게 극심한 고통을 줬다. 오죽했으면 ‘촛불민심’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5년 만에 정권을 내줬겠는가?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를 직시한다면 은행 팔을 비틀어 이익을 찔끔 토하도록 할 게 아니라 이들의 빗나간 사업모델을 손봐야 한다.

은행이 묘한 것은 집값이 오를 때 구매자금을 계속 대줘 판을 키우는 불쏘시개 노릇을 한다는 점이다. 어쩌다 보니 그리된 게 아니라 그게 본업인 점이 문제다. 집이 손바뀜할 때마다 구매자는 점점 더 많은 돈을 빌려야 하고, 은행의 자산(대출금)은 자동으로 부풀어 오른다. 집값이 오를수록 은행 이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담보도 확실한 쉬운 장사인데, 빚에 짓눌리는 고통은 대출자의 몫이다.

이런 사업모델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은행은 기업대출이 주업이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수익성과 안전성을 좇아 주택담보대출이란 새 영역에 뛰어든다. 이는 영미권 금융자본이 주택을 금융상품화해 수익 극대화를 꾀한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런 ‘주택시장의 금융화’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거품과 붕괴를 불렀다. 무엇보다 주택은 ‘따뜻한 가정’을 품는 특수한 재화란 점에서 불행을 잉태한 것이었다. 주택가격의 급등락은 많은 이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했고, 자산 불평등을 심화했다. 은행이 사악했다기보다 수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의 결과가 오염물질 배출과 흡사한 ‘외부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투기에 친화적인 금융시스템을 두고 주거안정을 이루기 어렵다. 그 난리를 쳤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아직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른다. 전 정부 청와대 고위인사는 최근 열린 한 토론회에서 “다시 집권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집값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지만, 운 좋게 하강 사이클에 집권했을 뿐이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낸 책 ‘부동산과 정치’에서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넘치는 돈이 자산시장으로 흘러가는 구조이며, 공급, 세제, 청약제도 등은 부차적인 요인”이었다고 회고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유동성에 떠넘기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높여 유동성을 줄이자 집값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민주연구원 주최로 지난달 8일 국회에서 ‘한국형 횡재세 도입, 세금인가 부담금인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와 민주연구원 주최로 지난달 8일 국회에서 ‘한국형 횡재세 도입, 세금인가 부담금인가?’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렇다면 전 정부의 실패는 유동성이 주택에 대한 과잉수요로 이어지는 길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한 데 있다. 중앙은행이 자산시장만 보고 금리를 올리지는 않기에 결국 남는 것은 은행의 담보대출 관리다. 금리가 낮다고 집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대출을 기반으로 추격매수가 가능해 보일 때 오르기 때문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 강한 대출 억제책을 내놨지만 적기에 시행되지 않았고, 우회로가 많았다. 여기에 ‘갭투자’를 가능케 하는 전세를 금융부채로 잡을지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미비했다.

머잖아 다시 금리가 낮아지고 유동성이 집값을 들썩이게 할 것이다. 또 실패하지 않기 위해 할 일은 과거 대기업 여신 총량규제를 방불케 하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부동산 대출 규제다. 김용기 포용금융연구회장(아주대 국제학부 교수)은 주택금융대출 준칙 같은 것을 만들어 관리하자고 한다. 건설 자금이나 신규주택 구매 자금은 지원하되 집값이 오르는 시기, 인기 지역의 기존 주택에 대한 대출은 불가능에 가깝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간 팽창했던 은행 자산이 이 과정에서 줄어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은행이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 발굴·지원과 같이 좀 더 전문적이고 생산적인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부동산을 손쉬운 경기 조절 수단으로 삼는 ‘빚내서 집 사라’ 식의 정책이 더 나와서는 안 된다. 은행의 수익성과 자율성을 금과옥조 삼는 시장주의 접근도 때와 장소에 맞아야 한다. 은행이 정부가 위임한 신용 창출 기능을 과도하게 사익 추구에 전용할 때, 전체를 위해 규제에 나서는 것은 정부의 책무다. 이미 경계선을 넘은 가계부채는 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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