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_대학교수 2
일찍이 ‘지식인으로서 대학교수의 죽음을 예감’한 사회학자 고병권은 지식기반사회가 강조되던 지난 2006년, 한 잡지에 발표한 글에서 “지식인의 죽음은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복합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면서 “지식기반사회에서의 지식이 우리 삶의 상과 관련된 인식이 아닌 비즈니스 재료에 불과”할 때 희극적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지식인이 사라져 가는 느낌을 받을 때”는 비극적이라고 했다.
2024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이 요동친다. 노사를 비롯한 각종 이해관계자 및 시민사회단체도 저마다 ‘총선태세’로 전환한다. 그런데 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일부 교수들의 출마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많은 교수가 여야 정당의 공약 만들기나, 이런저런 단체의 정책자문을 위해 시나브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낯설지도 않은 모습이다. 특히 정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루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더욱 도드라진다. 지난 2022년 대선을 복기해 보자. 거대 정당 대선 주자들의 대선 캠프나 싱크탱크를 표방하는 정책 모임 등에 수백명, 아니 천여명이 넘는 교수들이 몰려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학교수들이 왜 이렇듯 선거철마다 선거캠프나 각종 단체의 정책자문의 장에 다투어 얼굴을 내밀까? 세간에서 흔히 언급하는 ‘폴리페서’(정치인+교수)라는 시선만으로는 이 현상의 배경과 의미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한 교수는 “대학교수의 역할은 기존 정책보다 더 진보적인 정책을 제안하고, 정교화하는 것인데, 정치라는 공간에서 이를 대중화하고 정책화한다는 점에서 (선거 참여의) 긍정적 기능이 적잖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특정 정책의 의제화를 꾀하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 선거에서 후보나 정당이 공약으로 내걸게 하고 당선되면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란 견해다. 지지 후보나 정당이 승리하면 해당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에, ‘선거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의 창’이란 말이기도 하다. 실제 그의 말대로 건강보험 통합, 무상급식,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등 몇몇 사회정책은 이런 선거 정치 과정을 통해 현실화했다.
반론도 만만찮다. 신광영 중앙대 명예교수는 “연구에 기초한 정책참여는 선거 훨씬 이전부터 논의되고 공개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선거 과정에서 부랴부랴 정책이 급조되고, 더구나 후보자들의 정책 이해도마저 낮다 보니 보여주기식 정책 논의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정책 논의는 깊이 있게 이뤄지지 않는 데다, 당선자의 정책이해도도 떨어져 정작 실제 정책 입안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얘기다.
같은 대학 신진욱 교수(사회학)는 좀 더 구조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정치계급의 최상층에 있는 집단들이 선거에서 그들의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담론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학교수들과 전문가들이 대량의 정책상품을 무상으로 공급해 주는” 게 한국 선거 정치의 특성이자 “제도”라고 말했다. “교수들이 엄청난 양의 정책을 생산하면 (정당과 후보는) 표가 되는 것을 가공해 사용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국정비전, 목표, 과제를 작성할 때 한번 더 사용하며, 그다음에 버리는” 구조라는 얘기다. 그 배경에는 선거철마다 외부, 즉 학계에 신박한 정책을 얻고자 하는 정책에 취약한 한국 정당들의 후진적 정책 발굴 시스템, 이른바 ‘정책 외주화 시스템’이 자리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비록 개인적 출세욕이 아닌 공공선에 바탕을 둔 참여일지라도 대학교수의 정책 개입은 원천적으로 한계를 띨 수밖에 없다. 실제 선거 과정에 정책전문가로 참여하더라도 “개별화된 존재”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의견을 개진할 뿐, 주도권은 언제나 정치인들에게 있다는 것은 관련 경험을 한 여러 교수의 공통된 지적이다.
물론 캠프 참여 교수 가운데 몇몇은 대통령실(청와대) 비서관이나 장관 등 고위직으로 발탁돼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는 물론 현 윤석열 정부에서도 교수는 단일직군 가운데 정치인과 관료 못지않게 높은 비율로 내각에 참여했다. 하지만 정책 추진력이나 부처 장악력 등 역할 수행에서 호평은 받은 이는 드물다. 사회 현실에 숫제 눈감고 침묵하는 교수가 다수인 상황에서 정책의제 제기자로서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실제 역량 발휘나 성과 측면에서는 교수들이 박한 평가를 받는 게 현실이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선거 정치에서 정책 제기자로서 대학교수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원칙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는 “관료는 경로 의존성이 강하고, 국책연구기관 연구자는 테크니션(기술자)의 성격이 강하고, 정치인은 (정책) 전문성이 낮은 게 (한국 정책생태계의) 현실”이라면서 “그러하기에 사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고 대안을 내고 개혁하기 위해서는 (대학교수의) 선거 정치 등 정책 참여는 필요하다”면서도 “다만 학자로서 곡학아세하지 않고 기본적인 역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기본적인 역할을 “각 전문 분야의 사회적 흐름을 전달하고 보다 큰 틀에서 시대적 변화를 짚고, 한국사회의 비전과 전망을 그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다수 교수가 제각기 쪼개진 미시적 전공 영역에서 원자화, 개별화된 연구노동자로 전락해 있는 상황에서, 윤 교수의 그런 기대를 일반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열정적인 ‘학문공동체’의 일원 또는 학자로서 소명을 지닌 ‘총체적 지식인’으로서 대학교수가 존재할 때에야 “시대적 변화를 짚고, 한국사회의 비전과 전망을 그리는” 교수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찍이 ‘지식인으로서 대학교수의 죽음을 예감’한 사회학자 고병권은 지식기반사회가 강조되던 지난 2006년, 한 잡지에 발표한 글에서 “지식인의 죽음은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 복합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면서 “지식기반사회에서의 지식이 우리 삶의 상과 관련된 인식이 아닌 비즈니스 재료에 불과”할 때 희극적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지식인이 사라져 가는 느낌을 받을 때”는 비극적이라고 했다.
2023년 현재, 그의 눈에 비친 대학교수는 어떤 존재일까? 그는 “대학교수는 더는 권력자들의 소품이나 이데올로기 제공자란 수동적 존재가 아니며, 스스로 이익과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이들”이라고 진단했다. 교수 대다수가 하나의 기능적 직업인으로서 이해관계자가 됐다는 얘기다.
고 박사가 대학교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대목은 “현장성 상실”이다. “현장성이 없다는 것은 곧 그들의 이론에 실천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한해에 교수들의 논문 수백, 수천편이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되지만, 절박한 아우성에 대한 깊은 현장 탐색과 대안 모색 없이 “오직 해당 전공 분야의 몇몇 학자들만이 문제와 답변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부류의 논문들이 태반이란 말이다. “지식의 진보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모토를 내건 국가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연간 연구예산 9조7천억원 상당 부분이 그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투입된다.
이런 상황의 뿌리는 한국 대학의 문제와 연결된다. “세속적인 너무나 세속적인” 길로 달려온 한국의 대학은 비판적 지성이나 학문의 상아탑이란 말과는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다. 경쟁과 시장논리, 관료적 통제로 비판적 지성을 잠식하고, 연구업적 지상주의로 교수를 논문 제조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각자도생의 시대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공공선의 역할 대신, 각자도생의 주체가 되어 구성원들에게도 함께 뛰도록 강제했다. 그 배경에는 시대적 흐름과 몇몇 언론사 등에서 시행하는 ‘대학평가’ 등 크고 작은 요인들이 두루 작용했을 텐데, 중요한 건 그런 대학이 바뀌지 않으면 교수에게 의미 있는 정책생산자로서 역할도 제대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장논리와 그것이 강요하는 개인화, 원자화의 관성을 넘어, 미시화된 자기 전공에 대한 주관적 도취와 열정을 넘어 (…) 공부한다는 것이 공동선의 가치를 확인하고 마침내 그 가치를 철의 무기가 된다는 것을 입증해 내는 일이 지식인으로서의 대학교수들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 (…) 그렇게 할 때만이 (…) 비로소 직업이 아닌 소명으로서 떳떳해질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2010년 인문교양 계간지 ‘황해문화’(66호)에 쓴 ‘대학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구절이다. 대학교수가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에서 의미 있는 정책지식 생산자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선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복지를 중심으로 노동, 주거, 환경 등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요소와 정책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대한민국 정책생태계와 복지정치의 혁신 없이는 좋은 복지국가도, 질 높은 민주주의도 이뤄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정책 행위자를 탐구하는 이 연재칼럼 집필에 매진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과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상임이사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복지의 문법’(공저),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등이 있다.
goni@hani.co.kr
지식인으로서 대학교수의 위기는 곧 대학의 위기다. 게티이미지뱅크
연재이창곤의 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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