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 일이다. 카카오에서 의견을 구하는 연락이 왔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의 출시 10주년을 앞두고 내부 혁신을 준비 중이라고 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몇가지 조언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달도 안 돼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위기가 닥쳤다. 본격적인 비대면 시대의 도래는 카카오에 초대박을 안겼다. 카카오 임원은 “실적이 좋고, 주가가 급등할 때 기업 혁신은 어렵다”고 털어놨다. 카카오의 혁신은 그렇게 흐지부지됐다.
최근 카카오의 쇄신 약속이 잇따른다. 가맹택시 수수료 매출 과다 계상 논란이 일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수수료 인하와 체계 개편, 택시 중개 플랫폼 개방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범수 창업자는 “모든 서비스와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혐의에 따른 ‘위기 모면용’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만약 코로나 위기와 상관없이 진작에 혁신을 했다면 어땠을까.
자회사들의 골목상권 침해, 인수 기업의 이중상장, 그룹의 옥상옥 격 지주회사인 케이큐브홀딩스의 금산분리 위배,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스톡옵션 먹튀 사건. 최근 수년간 카카오에 울린 ‘위기경보’는 한두건이 아니다. 이런 경보음이 무시된 배경에는 취약한 기업지배구조가 있다. 카카오는 계열사 자율경영 형태를 취하면서, 실적에 연동해서 스톡옵션 등 강력한 성과보상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단기 성과는 거둘지 모르지만, 법규 준수나 사회적 책임 이행은 소홀해지기 십상이다.
카카오 내부에서도 그룹 차원의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건의가 진작부터 있었지만, 모두 무시됐다. 이번에는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겉핥기식 조처에 그쳐서는 안 된다. 특히 외부기관인 준법과신뢰위원회에만 준법윤리경영을 맡길 일이 아니다.
카카오로서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지만, 이 과정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보여주는 ‘카카오 때리기’는 정상적인 금융감독기구 수장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금감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진중해야 한다. 하지만 이 원장은 정반대다. 카카오모빌리티의 회계 처리 적정성에 대한 금감원 감리는 이제 시작 단계다. 이후에도 감리위원회와 증권선물위원회 등 갈 길이 멀다. 그런데도 자기가 카카오의 운명을 결정하는 권한이나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
최근 이 원장은 논란이 큰 주식 공매도 금지와 ‘은행 때리기’에도 앞장섰다. 두 정책 모두 무모한 ‘선거용 포퓰리즘’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 정부의 든든한 우군을 자처했던 보수언론들조차 “시장경제 비트는 민생경제”, “시장에서 멀어지는 보수정부”라며 쓴소리를 쏟아낸다. 대다수 국민이 고금리로 신음하는데도 은행이 60조원의 이자이익으로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것은 정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은행 팔을 비틀어 금리를 내리는 ‘관치’가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불리는 가계부채 불안만 더 키울 수 있다. 이 원장은 올해 초에도 은행 때리기에 열을 올렸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정책과 제도 개선이 아니라 말만 앞세운 결과다.
이 원장의 뒤에는 ‘경제 초보’ 대통령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11월1일 “카카오의 택시에 대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 반드시 조치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마치 은행 종노릇하는 것 같다”고 목청을 높였다. 정부의 무능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하자, 재벌과 은행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는 상투적 수법이다. 정상적인 정책으로 경제와 민생을 살리기 힘든 경제 초보 대통령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국민에겐 재앙이다.
이복현 원장은 경제 초보 대통령의 오판을 말리기는커녕 누구보다 앞장서서 총선용 포퓰리즘의 ‘칼춤’을 추었다. 금감원이 공정한 금융시장 질서 확립 등의 설립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독립성이 필수다. 이 원장은 검사 시절 ‘윤석열 사단’의 일원으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렸다. 그런 그에게 금감원장을 맡긴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원장이 임명될 때 금융·경제 수사 전문가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도 “적임자”라고 옹호했다. 금융 사건을 많이 다룬 검사가 금융 전문가라면, 의료 사건을 많이 다룬 검사는 의사 역할을 해도 된단 말인가.
‘경제 초보’ 대통령과 독립성도 전문성도 부족한 ‘칼잡이’ 금감원장이 앞으로도 어떤 ‘총선용 포퓰리즘’ 합작품을 내놓을지 벌써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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